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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대서양 횡단 비행 == 개요 == ''''사상 최초의 대서양 횡단 비행''''은 1919년 6월 15일, 영국인 [[조종사]] 존 알콕(John Alcock)과 [[항법사]] 아서 브라운(Arthur Brown)에 의해서 이뤄졌다. * 일자: 1919년 [[6월 15일]] (6월 14일 출발) * 구간: 뉴펀들랜드 세인트존스(캐나다) ~ 클리프던(아일랜드) * 소요시간: 약 16시간 * 기타: 영국 신문사 데일리메일이 내건 72시간 내 대서양 횡단 1만 파운드 상금 획득, 기사 작위 명예 ==최초의 단독 대서양 횡단 비행== 1927년 [[5월 21일]], [[찰스 린드버그]] ==최초의 여성 단독 대서양 횡단 비행== 1932년 5월 21일, [[아멜리아 에어하트]] ==기타, 대서양 횡단 비행의 의미== 항공 개척 시기를 이끌었던 곳은 미국과 유럽이었다.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사상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하면서 가능성과 이론적 배경을 세상에 내 놓았고 그 기술은 유럽으로 건너가 비약적인 항공기술 발전을 이루었다. 유럽과 미국은 같은 역사에서 비롯되었다는 동질감이 큰 관계였고 항공기술 역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 관계에 있었다. 따라서 대서양은 두 지역 간의 거리감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 거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관계의 밀접성은 더 커질 수 있었다. 또한 해양을 20시간~30시간 비행해야 하는 환경은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장시간 비행에 잠을 잘 수도 없었고 하늘과 바다를 착각해 추락할 수도 있다. 또한 [[항법]]기술의 한계로 방향의 지침을 삼을 만한 상징물이 부족했기 때문에 자칫 엉뚱한 곳으로 날아 가버릴 수도 있었을 만큼 위험한 비행이자 모험이었다. 따라서 당시 대서양 횡단은 모험과 개척의 상징으로 대표되었으며 이를 성공시키는 것 자체를 기적으로 여길 정도였다. 이 비행을 통해 대중들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이에 따른 비행기술은 더욱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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