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항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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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nue=4,812억 엔(연결기준 2021년 3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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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항공(Japan Airlines, 日本航空)==
==일본항공(Japan Airlines, 日本航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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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연혁==


* 1951년 [[8월 1일]], 설립. [[필리핀항공]]에서 임대한 DC-3 항공기로 운항 시작
* 1951년 [[8월 1일]], 설립.
* 1951년 [[10월 25일]], [[필리핀항공]]에서 임대한 DC-3 항공기로 운항 시작
* 1953년 8월 1일, [[국영 항공사]] 전환
* 1953년 8월 1일, [[국영 항공사]] 전환
* 1960년, DC-8 도입하며 제트 항공기 시대
* 1960년, DC-8 도입하며 제트 항공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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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1월 19일]], 경영난으로 인해 기업재활법에 따라 파산보호 신청<ref>[https://airtravelinfo.kr/xe/column/22221 일본항공(JAL)의 법정관리와 전일공수(ANA)의 불편한 속내]</ref> (당시까지 일본 비금융 기업 가운데 최대 파산 사례였으며 일본 역사상 4번째 큰 규모 파산), 이후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설립자가 일본항공 파산 재건을 이끌게 됨
* 2010년 [[1월 19일]], 경영난으로 인해 기업재활법에 따라 파산보호 신청<ref>[https://airtravelinfo.kr/xe/column/22221 일본항공(JAL)의 법정관리와 전일공수(ANA)의 불편한 속내]</ref> (당시까지 일본 비금융 기업 가운데 최대 파산 사례였으며 일본 역사상 4번째 큰 규모 파산), 이후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설립자가 일본항공 파산 재건을 이끌게 됨
* 2012년, 주식 재상장
* 2012년, 주식 재상장
* 2017년, 파산 및 재생과 함께 가해졌던 각종 제재 해금<ref>[https://airtravelinfo.kr/xe/column/1185364 2017년 JAL 해금(解禁), 일본 항공업계 지각변동]</ref>
* 2017년, 파산 및 회생조치과 함께 가해졌던 각종 제재 해금<ref>[https://airtravelinfo.kr/xe/column/1185364 2017년 JAL 해금(解禁), 일본 항공업계 지각변동]</ref>
* 2018년 7월 31일, 장거리 LCC [[집에어 도쿄]] 설립
* 2021년 6월, 중국계 [[LCC]] [[춘추항공 재팬]] 지분 완전 인수
* 2021년 6월, 중국계 [[LCC]] [[춘추항공 재팬]] 지분 완전 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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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설립 이후 일본항공은 줄곧 반관반민 체제를 이어왔다. 1987년 민영화 이후에도 전직 관료들이 낙하산으로 [[일본항공]] 경영층을 차지했고 일본 정치권은 지방 민심을 얻기 위해 수익성 낮은 지방공항에도 일본항공을 운항시켰다. 2002년 [[재팬에어시스템]]을 인수한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덩치는 커졌지만 중복 [[노선]]만 늘어나면서 비효율성은 크게 증가했다.
1951년 설립 이후 일본항공은 줄곧 반관반민 체제를 이어왔다. 1987년 민영화 이후에도 전직 관료들이 낙하산으로 [[일본항공]] 경영층을 차지했고 일본 정치권은 지방 민심을 얻기 위해 수익성 낮은 지방공항에도 일본항공을 운항시켰다. 2002년 [[재팬에어시스템]]을 인수한 것도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덩치는 커졌지만 중복 [[노선]]만 늘어나면서 비효율성은 크게 증가했다.


2010년 파산보호를 신청한 후 일본항공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은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효율성'을 앞세워 JAL 운영 전략을 재정비했다. 작은 조직에 큰 의사 결정권을 부여한 아메바 경영 방식을 도입했다. 일본 정부는 6조 원에 달하는 금융채무를 탕감해주는 등 13조 원에 달하는 금융을 지원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리스]]사나 정유사 등에 신용보증을 서면서 일본항공은 큰 무리없이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2012년 주식시장에 재상장되면서 정상화되었다.
2010년 파산보호를 신청한 후 일본항공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은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명예회장이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효율성'을 앞세워 JAL 운영 전략을 재정비했다. 작은 조직에 큰 의사 결정권을 부여한 아메바 경영 방식을 도입했다. 일본 정부는 6조 원에 달하는 금융채무를 탕감해주는 등 13조 원에 달하는 금융을 지원했다. 또한 정부 차원에서 [[리스]]사나 정유사 등에 신용보증을 서면서 일본항공은 큰 무리없이 법정관리에서 벗어났다. 2012년 주식시장에 재상장되면서 정상화되었다.


* [[일본항공 파산(2010년)]]
* [[일본항공 파산(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