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902편 피격 사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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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이후==
==사고 이후==
당시 대한민국과 소련은 수교 관계를 맺지 않았고 냉전 시대 상황 속에 상호 적대국이었다. 미국이 대리 협상에 나서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난 후 승객들은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귀국했다. 기장(김창규)과 항법사(이근식)는 소련 당국에 억류되어 조사를 받았고 사고 원인에 대한 부분을 인정한 후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과 소련은 수교 관계를 맺지 않았고 냉전 시대 상황 속에 상호 적대국이었다. 미국이 대리 협상에 나서 사고 발생 이틀이 지난 후 승객들은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귀국했다. [[기장]](김창규)과 [[항법사]](이근식)는 소련 당국에 억류되어 조사를 받았고 사고 원인에 대한 부분을 인정한 후에야 귀국할 수 있었다.


소련 당국은 대한민국에 10만 달러 배상금을 청구했다.
소련 당국은 대한민국에 10만 달러 배상금을 청구했다.


사고 항공기 조종사 김창규 기장은 얼어붙은 호수 착륙이라는 매우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이유로 국제 조종사 협회에서 최고의 조종사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소련 영공에 진입하는 등 사고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피하지는 못했다.
사고 항공기 [[조종사]] 김창규 기장은 얼어붙은 호수 착륙이라는 매우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이유로 국제 조종사 협회에서 최고의 조종사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소련 [[영공]]에 진입하는 등 사고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난을 피하지는 못했다.


==기타==
==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