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항공: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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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22일, 건설교통부에 부정기항공운송사업 면허를 재신청하고 청주-제주 노선 취항을 준비했다. 운임을 기존 항공사 대비 절반 수준으로 책정했으며, 조기 예약 시 최대 20% 할인하는 파격적인 가격 정책도 내세웠다.
2005년 2월 22일, 건설교통부에 부정기항공운송사업 면허를 재신청하고 청주-제주 노선 취항을 준비했다. 운임을 기존 항공사 대비 절반 수준으로 책정했으며, 조기 예약 시 최대 20% 할인하는 파격적인 가격 정책도 내세웠다.


2005년 4월 1일, 부정기항공운송사업 면허를 획득했다. 당시에도 부정기 항공사는 여럿 있었지만 한성항공은 마치 국내 최초의 제3 민간 항공사인 것처럼 화제가 됐으며 이에 대한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2005년 4월 1일, 부정기항공운송사업 면허를 획득했다. 당시에도 부정기 항공사는 여럿 있었지만 한성항공은 마치 국내 최초의 제3 민간 항공사인 것처럼 비춰지며 화제가 되자 과대포장 등이라며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취항 일자는 2004년 10월에서 12월, 이듬해 6월 27일, 8월 등으로 연기됐다. 최초에는 사업면허 취득이 원인이었다면 이후에는 항공기 도입 일정이 관건이었다. 항공기 외부에 각종 광고를 부착해 수익 사업을 벌이겠다며 별도 페인팅을 하지 않고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옥외광고물 관련 법령으로 항공기 동체 광고가 허락되지 않았다. 한성항공 첫 항공기(ATR 72-200)는 2005년 7월 2일 청주공항에 도착했다.
취항 일자는 2004년 10월에서 12월, 이듬해 6월 27일, 8월 등으로 연기됐다. 최초에는 사업면허 취득이 원인이었다면 이후에는 항공기 도입 일정이 관건이었다. 항공기 외부에 각종 광고를 부착하는 수익사업을 위해 별도 페인팅을 하지 않고 도입하려 했다. 하지만 당시 옥외광고물 관련 법령으로 항공기 동체 광고가 허락되지 않았다. 한성항공 첫 항공기(ATR 72-200)는 2005년 7월 2일 청주공항에 도착했다.


본격적인 운항을 시작한 한성항공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업 모델을 선보였다. LCC 사업 모델 가운데 단일 클래스, 단일 기종, 선착순 탑승, 단거리 운항, [[항공권]] 직접 판매, 유상 [[기내식]] 등을 적용했다.
본격적인 운항을 시작한 한성항공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업 모델을 선보였다. LCC 사업 모델 가운데 [[모노 클래스|단일 클래스]], 단일 기종, 선착순 [[탑승]], 단거리 운항, [[항공권]] 직접 판매, 유상 [[기내식]] 등을 적용했다.


취항 초기 한성항공은 경영권 내분에 휩싸였다. 새롭게 구성된 이사진에서 설립자였던 이덕형 대표가 빠진 것이 발단이었다.  2005년 11월 7일 청주지법 민사합의1부는 주주들로 구성된 대책위가 신청한 '이모 이사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되었고 관선이사가 파견됐다. 2006년 1월 4일 대책위가 제출한 한우봉 대표에 대한 '직무집행 방해 배제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경영정상화 작업에 들어갔다.
취항 초기 경영권 내분에 휩싸였다. 새롭게 구성된 이사진에서 설립자였던 [[이덕형]] 대표가 제외된 것이 발단이었다.  2005년 11월 7일 청주지법 민사합의1부는 주주들로 구성된 대책위가 신청한 '이모 이사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되었고 관선이사가 파견됐다. 2006년 1월 4일 대책위가 제출한 한우봉 대표에 대한 '직무집행 방해 배제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경영정상화 작업에 들어갔다.


2005년 10월 28일 발생한 랜딩기어 타이어 파손 사건은 저비용항공사(당시 표현으로는 '저가항공사')의 안전성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는 계기가 됐다. 예비 타이어 부족으로 10월 30일이 돼서야 운항을 재개할 수 있었다. 드물지 않게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직전 퇴직한 한성항공 전 부사장이 "비행기 도입 당시부터 타이어 마모가 심해 [[정비사]]들이 여러 차례 교체를 요구했고 잦은 결함도 보고했지만 회사 측이 무시했다"고 폭로했다. 이 사건 이후 승객이 급속히 감소해 2005년 12월 19일부터 이듬해 2월 15일까지 운항을 중단했다.
2005년 [[10월 28일]] 발생한 [[랜딩기어]] 타이어 파손 사건은 저비용항공사(당시 표현으로는 '[[저가항공사]]')의 안전성 문제를 수면 위로 올리는 계기가 됐다. 예비 타이어 부족으로 10월 30일이 돼서야 운항을 재개할 수 있었다. 드물지 않게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직전 퇴직한 한성항공 전 부사장이 "비행기 도입 당시부터 타이어 마모가 심해 [[정비사]]들이 여러 차례 교체를 요구했고 잦은 결함도 보고했지만 회사 측이 무시했다"고 폭로하며 안전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이 사건 이후 승객이 급속히 감소해 2005년 12월 19일부터 이듬해 2월 15일까지 운항을 중단했다.


2005년 12월 2일, 한우봉 대표를 해임하고 신임 대표(이승훈)를 선임했지만 한 대표가 무효소송 등을 제기하면서 취임이 지연됐다. 2006년 4월 15일 법원의 판결로 한 대표는 패소했고 허근 이사가 신임 대표로 취임했다.
2005년 12월 2일, 한우봉 대표를 해임하고 신임 대표(이승훈)를 선임했지만 한 대표가 무효소송 등을 제기하면서 취임이 지연됐다. 2006년 4월 15일 법원의 판결로 한 대표는 패소했고 허근 이사가 신임 대표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