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항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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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은 1958년 국제공항 승격이래 계속 성장하여 1971년 국내선 여객 처리 100만 명을 돌파했고, 국제선은 1973년 100만 명을 넘어섰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로 국제선 545만 명, 국내선 475만 명으로 1천만 명이 넘게 이용하는 공항으로 성장하였다.
김포공항은 1958년 국제공항 승격이래 계속 성장하여 1971년 국내선 여객 처리 100만 명을 돌파했고, 국제선은 1973년 100만 명을 넘어섰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로 국제선 545만 명, 국내선 475만 명으로 1천만 명이 넘게 이용하는 공항으로 성장하였다.


국제공항 확장 계획에 따라 인천공항이 개항한 2001년 국제선 기능을 인천공항에 넘겨주고 국내선 전용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시내에 근접한 잇점 때문에 근거리 국제선 요구가 지속되자 2003년 김포(서울)-하네다(도쿄)
국제공항 확장 계획에 따라 인천공항이 개항한 2001년 국제선 기능을 인천공항에 넘겨주고 국내선 전용으로 전환되었다. 하지만 시내에 근접한 잇점 때문에 근거리 국제선 요구가 지속되자 2003년 김포(서울)-하네다(도쿄) 노선을 시작으로 국제선이 부활되었다. 2019년 현재 김포공항은 국내선 및 일본, 중국, 타이베이 등 근거리 국제노선 일부를 운항하는 국제공항으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김해공항==


이후 김해국제공항을 시작으로 지방에도 비행장이 설치되었다. 김해국제공항은 1940년 일본 육군비행장으로 개설된 부산 수영비행장에서 출발했다. 1950년 임시국제공항으로 운영하다 전쟁이 끝난 후 여의도공항이 임시국제공항으로 지정되면서 수영임시국제공항은 폐지되었다. 그러다가 1958년 부산비행장으로 명칭이 바뀌고, 1963년 국제공항으로 승격되었다.
이후 김해국제공항을 시작으로 지방에도 비행장이 설치되었다. 김해국제공항은 1940년 일본 육군비행장으로 개설된 부산 수영비행장에서 출발했다. 1950년 임시국제공항으로 운영하다 전쟁이 끝난 후 여의도공항이 임시국제공항으로 지정되면서 수영임시국제공항은 폐지되었다. 그러다가 1958년 부산비행장으로 명칭이 바뀌고, 1963년 국제공항으로 승격되었다.


제주국제공항은 1942년 육군비행장으로 시작하였다. 1958년 여객청사와 활주로 보수공사가 완료되면서 제주는 우리나라 제일의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광주비행장은 1946년 미군이 한국 민간인을 수송하면서 개설되었다. 강릉비행장은 전란으로 소실된 시설의 보수가 마무리된 1958년 정식 비행장이 되었다.
제주국제공항은 1942년 육군비행장으로 시작하였다. 1958년 여객청사와 활주로 보수공사가 완료되면서 제주는 우리나라 제일의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광주비행장은 1946년 미군이 한국 민간인을 수송하면서 개설되었다. 강릉비행장은 전란으로 소실된 시설의 보수가 마무리된 1958년 정식 비행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