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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어 1호]] 1차 비행 실험 3일 후인 1903년 12월 17일 2차 실험에 나섰다. 당일 바람은 시속 27마일로 예상보다 강한 편이었다. 플라이어 1호 비행 속도를 시속 30~35마일로 예상했기 때문에 맞바람은 실제 비행거리를 길게 가져가기 어려웠다. | [[플라이어 1호]] 1차 비행 실험 3일 후인 1903년 12월 17일 2차 실험에 나섰다. 당일 바람은 시속 27마일로 예상보다 강한 편이었다. 플라이어 1호 비행 속도를 시속 30~35마일로 예상했기 때문에 맞바람은 실제 비행거리를 길게 가져가기 어려웠다. | ||
이번 비행은 오빌 라이트의 차례였다. 오전 10시 35분 플라이어 1호는 레일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플라이어 1호는 곧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1차 | 이번 비행은 오빌 라이트의 차례였다. 오전 10시 35분 플라이어 1호는 레일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플라이어 1호는 곧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윌버가 실시했던 1차 비행에서의 경험을 적극 활용했다. 스틱([[조종간]])으로 수평 [[엘리베이터]]를 움직여 플라이어 1호의 상하 움직임을 만들었고 몸을 좌우로 흔들어 날개를 비틀고 수직 꼬리를 움직여 좌우 움직임을 만들며 비행을 이어갔다. | ||
존 다니엘스는 카메라로 이 역사적인 장면을 포착했다. 첫 | 존 다니엘스는 카메라로 이 역사적인 장면을 포착했다. 첫 번째 시도에서 오빌의 과도한 조종 콘트롤은 효과적이지 못해 약 120피트(37미터) 정도만 날 수 있었다. 시속 27마일 [[맞바람]] 속도 때문에 [[지면속도]]는 불과 시속 6.8마일에 머물렀다. 이후 세 차례 더 비행하면서 그들은 비행기 조종(움직임 통제)에 익숙해져 갔고 마지막 비행에서는 59초 동안 852피트(260미터) 거리를 날았다. 하지만 [[플라이어 1호]]는 마지막 비행에서 돌풍에 뒤집히면서 망가져 더 이상 비행 실험을 지속하지 못했다. | ||
그들이 제작한 [[플라이어 1호]]의 기술적 성능도 중요했지만 [[라이트 형제]]는 수 많은 실험을 거쳐 도출해 낸 [[3축 운동]]으로 비행 움직임을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이것이 실제 비행을 성공하게 만든 가장 큰 요인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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