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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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개발자, 군인 | |
출생 | 1918년 3월 20일 |
사망 | 1991년 ( 7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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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연 : 항공기 개발 선구자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해군 예비역 중령으로 우리나라 항공기 개발의 선구자로 대한민국 항공기 개발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한국 전쟁 중 해군 장교로 임관한 그는 해군에 복무하면서 자체 항공기를 다수 개발해냈다. 모두 8대의 항공기를 개발했으며 그 가운데 7대를 성공시켜 실제 해군 임무에 투입했다. 이 공로로 은성 무공훈장 등 4차례 훈장을 받았으며 해군 항공대를 창설하고 초대 해군 항공대장을 역임했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항공기 개발[편집 | 원본 편집]
해취호[편집 | 원본 편집]
1951년 파손되어 방치된 미군의 육상 비행기 AT-6 Texan을 미군의 허가(교육용으로 사용)를 받아 수상 비행기로 개조했다. 이 사업 수행을 위해 14명의 항공기술자를 소집해 진해 해군공창 항공반을 조직했다. 같은 해 8월 15일 완성된 이 비행기는 해취(바다독수리)로 명명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수상 비행기로 단순히 비행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해군의 실전에 비치되어 해상경비 작전 지원, 업무연락, 인원 수송 등의 임무를 수행했다.
서해호(SX-1)[편집 | 원본 편집]
1954년 개발한 수상 비행기로 엔진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 자체 개발한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기라고 할 수 있다.
SX-2[편집 | 원본 편집]
일본 항공잡지에 게재된 비행기를 보고 1955년 해군 공창 항공반에서 제작했으나 시험비행 중 추락해 파손돼 폐기처분됐다.
제해호(SX-3)[편집 | 원본 편집]
1956년 격상된 해군과학연구소 항공과장으로 임명되어 개발한 4~6인승 중형급 비행기다. L-19 파손 엔진 4개를 획득해 제작했으며 그외 모든 기체는 직접 만들었다. 시험비행 성공후 1957년 7월 항공부대인 함대항공대가 창설됐다.
이후 L-19 연락기를 개조한 수상기 통해호(SX-5)와 L-19 기체를 재생한 육상기 1001/1002/1003호기 등을 연이어 제작했다.
항공기 개발 종료[편집 | 원본 편집]
1957년 제해호 개발 이후에도 비행기 개발 연구를 이어가려고 했지만 예상 부족으로 개발을 중단하게 된다. 당시 국방 예산 부족으로 미군의 군사원조에 의해 무기 체계 운용비용을 담당했다. 미군은 1961년 제해호를 비롯한 한국 해군 항공기에 대해 군수지원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더 이상 항공기 개발을 이어갈 수 없게 됐다.
결국 해군은 1961년 2월 23일, 자체 제작 항공기를 모두 해양경찰대에 이관했으며 조경연 중령은 예편했다. 운용할 항공기 한 대 없는 해군함대항공대 역시 1963년 3월 1일 해체됐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