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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에서 태어난 그는 의사인 아버지와 함께 풍요롭게 자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불륜의 결과로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어머니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간호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증명되지는 않았다.
이란에서 태어난 그는 의사인 아버지와 함께 풍요롭게 자랐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불륜의 결과로 태어났다고 주장하고 어머니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간호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증명되지는 않았다.


1977년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이란에서 추방당했으며 벨기에의 유엔난민 당국으로부터 난민 지위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증명되지는 않았다. 1988년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던 중 짐을 분실했고 신분증 역시 다시 찾지 못했다. 영국에 입국하려던 그는 여행서류(여권 등)가 없어 원래 출발지인 프랑스 파리로 되돌아 갔고 프랑스 역시 여행서류가 없는 그를 입국시키지 않고 공항 대기실에 머물게 했다.
1977년 반정부 시위에 참여해 이란에서 추방당했으며 벨기에의 유엔난민 당국으로부터 난민 지위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했지만 이 역시 증명되지는 않았다. 1988년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던 중 짐을 분실했고 신분증 역시 다시 찾지 못했다. 영국에 [[입국]]하려던 그는 여행서류([[여권]] 등)가 없어 원래 출발지인 프랑스 파리로 되돌아 갔고 프랑스 역시 여행서류가 없는 그를 입국시키지 않고 [[공항]] 대기실에 머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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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이후 프랑스 인권 변호사가 벨기에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벨기에는 새로운 신분 증명서를 발급하려고도 했지만 당사자가 자국에 없는 상황에서 이마저도 불가능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1995년 벨기에 당국이 자국으로의 입국을 허가했다. 하지만 나세리는 원래 계획했던대로 영국에 입국하기를 원한다고 주장하면서 벨기에의 조치를 거부했다.
이 사건은 이후 프랑스 인권 변호사가 벨기에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벨기에는 새로운 신분 증명서를 발급하려고도 했지만 당사자가 자국에 없는 상황에서 이마저도 불가능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1995년 벨기에 당국이 자국으로의 입국을 허가했다. 하지만 나세리는 원래 계획했던대로 영국에 입국하기를 원한다고 주장하면서 벨기에의 조치(결정)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프레드 메란 경(Sir Alfred Mehran)'로 여행서류에 기재해주길 원했지만 관련 국가 당국은 그를 이란인으로 명시하면서 그의 요구를 거절했고  결국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여행서류 만들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알프레드 메란 경(Sir Alfred Mehran)'로 여행서류에 기재해주길 원했지만 관련 국가 당국은 그를 이란인으로 명시하면서 그의 요구를 거절했고  결국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여행서류 만들기는 실패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