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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형제는 당초 '[[플라이어 1호]](Wright Flyer 1)'를 스미소니언에 기부하려 했지만 스미소니언과의 갈등으로 이를 포기하고 나중에 다시 반환한다는 조건으로 1928년 영국 대영박물관에 빌려주어 전시하도록 했다. | 라이트 형제는 당초 '[[플라이어 1호]](Wright Flyer 1)'를 스미소니언에 기부하려 했지만 스미소니언과의 갈등으로 이를 포기하고 나중에 다시 반환한다는 조건으로 1928년 영국 대영박물관에 빌려주어 전시하도록 했다. | ||
이에 오빌 라이트는 미국을 떠나 프랑스, 유럽 등에서 비행기 개발에 관여했다. 1928년 미국으로 돌아와 보니 글렌 커티스가 사업에 실패하며 부도에 빠졌다. 오빌 라이트는 글렌 커티스의 Curtiss를 1929년 인수해 Wright Company와 합병해 Curtiss-Wright가 된다. (사명에 커티스 이름이 먼저인 것을 두고 당시 미국에서는 커티스가 항공기 제조 시장에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고 라이트 형제보다 이미지가 나았기 때문에 마케팅 상 커티스라는 이름을 앞세운 것으로 추정) | |||
오빌 라이트는 끝내 자신의 조국 미국에 대해 섭섭한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사상 최초의 동력비행이 이루어졌던 키티 호크(Kitty Hawk)에서 열린 1933년 30주년 기념식에 세운 기념비도 미국의 자금이 아닌 유럽 자금이었고 1943년 40주년 기념식도 조촐하게 보냈다. 그는 인터뷰에서 미국에 대한 아쉬움을 이렇게 표했다. | 오빌 라이트는 끝내 자신의 조국 미국에 대해 섭섭한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사상 최초의 동력비행이 이루어졌던 키티 호크(Kitty Hawk)에서 열린 1933년 30주년 기념식에 세운 기념비도 미국의 자금이 아닌 유럽 자금이었고 1943년 40주년 기념식도 조촐하게 보냈다. 그는 인터뷰에서 미국에 대한 아쉬움을 이렇게 표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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