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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호

부활호,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발된 동력 비행기

개요[편집 | 원본 편집]

1953년 6월 공군기술학교 주도로 개발 시작해 그해 완성해 10월 11일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공군 이원복 소령 주도로 개발된 대한민국 최초로 국내 설계되고[1], 사상 두번째로[2] 제작된 비행기(단발 프로펠러기)다. '부활'이라는 이름은 이승만 대통령이 하사한 것으로 연락, 정찰, 심리전 등의 목적이었다.


1960년대 자취를 감추었다가 2004년 우연히 뼈대만 남은 원형을 발견해 그해 복원했다. 2008년 등록 문화재 411호로 지정되었다. 2011년에는 원형대로 2기를 제작해 시험비행을 실시하기도 했다.

개발[편집 | 원본 편집]

1953년 공군기술학교장 김성태 대령의 우연과 같은 제안으로 비행기 개발이 시작되었다. 당시 소령으로 서울대 공대에 강의를 나가던 이원복에게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느냐'는 제안에 따라 6월 27명 전담반이 구성되었다.

당시 비행기와는 달리 뒷바퀴를 동체 중간부분으로 당기고 플랩도 장착해 낮은 속도에서도 쉽게 뜰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개발된 부활호는 그해 10월 11월 민역락 소령의 조종으로 시험비행에 나섰다. 이원복씨도 후방석에 동승했다. 약 2시간 동안 고도 1,300m까지 비행했다.

이듬해인 1954년 4월 3일,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대한민국의 부활'이라는 의미로 '復活(부활)'이라는 이름을 지어 명명식을 가졌다. 당시 부활호 제작자들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주어졌다.

실종 및 복원[편집 | 원본 편집]

1960년, 한국항공대학로 옮겨져 제작 실습용으로 사용되다가 한국항공대학이 1966년 2월 문을 닫으면서 부활호 역시 사라졌다.

부활호는 2004년 1월 13일 경상공업고등학교 지하창고에서 발견되었다. 경상공고가 폐교된 한국항공대학 자리에 들어서면서 지하창고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발견 당시 부활호는 뼈대만 남아있었고 공군은 이를 복원해 공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으며 2008년에는 등록문화재 411호로 지정되었다.

2008년 부활호를 개량 복원해 2011년 3월 2대를 제작했다. 단순 복원이 아니라 기체 형태는 유지하되 설계 및 제작은 모두 최신 기술이 적용되었다. 한 대는 한국항공우주산업의 항공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으며 다른 한 대는 항공우주엑스포 등 행사 때 시험비행에 나서기도 하고 있다.

제원[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 비행기 개발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국군이 직접 설계제작했다.
  2. 제작과 비행 자체는 사실 2년 먼저 해군의 해취호가 이미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