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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남
An changnam.jpg
비행사, 독립운동가
출생 1901년 3월 19일
사망 1930년 4월 2일
( 29세 )

안창남 :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가, 조종사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일제강점기에 독립 운동가로 활약했던 우리나라 민간 조종사이다. 우리나라 상공에서 처음 비행한 우리나라 국민이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비행사[편집 | 원본 편집]

1901년 태어난 그는 3.1운동 직후 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920년 오구리 비행학교에 입학해 비행기 제조법 및 조종기술을 공부해 1921년 5월 일본 최초로 시행된 비행사 자격시험에 합격해 정식 비행사가 되었다. 당시 17명 시험에 응해 단 두 명 합격했으며 그 중의 하나가 안창남이었다.

1922년 도코-오사카 구간 우편비행 대회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받는 등 탁월한 실력을 자랑했다. 동아일보의 초청으로 그해 12월 5일에 여의도 백사장에 도착해 10일,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넣은 금강호를 타고 모국 방문 비행을 실시해 일시에 유명인이 되었다. 당시 여의도 백사장에 비행을 보러 나온 사람은 5만 명에 달했다고 알려졌다. 이날 비행은 두 차례 시행해 각각 13분, 5분 동안 하늘을 날았다. 우리나라 상공에서 비행한 최초의 한국인 비행사다.

독립운동가[편집 | 원본 편집]

1924년 중국으로 망명해 중국군 소속으로 근무했고 조선청년동맹에 가입해 독립운동에도 참여했다. 여운형의 주선으로 중국에서 비행학교 교장으로 비행사를 양성했다. 1930년 4월 2일 비행 중 엔진 결함으로 추락해 29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달리했다. 독립운동에 참가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한국인 최초의 비행사는 아니었다. 미국에서 독립운동가 노백린이 양성한 한국인 6명(한장호, 이용선, 이초, 오림하, 장병훈, 이용근)이 안창남보다 약 1년 먼저 비행사가 되었다. 다만 우리나라 상공에서 사상 처음으로 비행한 한국인 비행사였던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다.

참고[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