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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 Trainer: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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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 Trainer==
==Link Trainer==


세계 최초의 비행 [[시뮬레이터]]다.
세계 최초의 비행 [[시뮬레이터]]다.
 
소형 모형 [[비행기]] 형태로 몸통 색상이 청색이고, 생산일정을 단축하기 위해 후기 모델부터 날개를 제거하자 마치 청색 덩어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Blue Box'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발명==
 
조종사이기도 했던 Edwin Albert Link(1904년 7월 26일 生)이 비행훈련 부족, 제한 등을 해결하고자 발명한 것으로 1930년 특허를 내고 Link Trainer를 제작, 판매하며 비행 시뮬레이터의 표준이 됐다.
 
==개발==
 
16세에 비행훈련을 시작해 조종 면허를 획득한 Edwin은 항상 적은 훈련량이 불만이었다. 날씨나 강사의 제한 등을 극복하고 비행훈련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부친의 오르간 공장(The Link Piano and Organ Company)에서 일하며 오르간의 패달, 공압 시스템 등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을 시작했다.
 
1929년, 비행자세를 제어하고 비행감각을 익힐 수 있는 조종석과 조종장치로 구성된 비행기 모형(동체) Pilot Maker를 개발했다. 비행훈련에 효과적이라 판단했지만 외부의 반응은 냉담했다. 자신의 Link Flying School에서 운용하면서 다른 몇 비행학교에서도 사용했지만 판매는 부진했다. 할 수 없이 개발한 시뮬레이터를 일부 놀이공원의 놀이장비(기구)로 판매하기도 했다. 수요가 가장 많은 미 육군항공대 앞에서 시연을 보였지만 긍정적인 결과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시뮬레이터 필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1934년 미 육군항공대가 정부와 계약을 맺고 항공우편을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계기비행]]에 익숙하지 않은 [[조종사]]들이 [[악천후]] 등 비정상적 상황에 처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80일도 안되는 기간동안 12명이나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됐다.
 
미 육군항공대는 문제 해결을 고민하던 중 Link Trainer 시뮬레이터 시연을 다시 검토했고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대당 3,500달러 Link Trainer 6대를 구매했다.
 
첫 번째 모델인 C-3를 개량한 AN-T-18 (Army Navy Trainer model 18) D2 버전은 캐나다, 영국공군을 위해 생산된 시뮬레이터였으며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판매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1939년~1945년) 기간 중 여러나라 조종사 훈련에 사용되었다. 영연방 항공훈련계획에 정식으로 포함될 정도로 효과를 인정받았으며 미국을 비롯해 연합국 거의 모든 비행학교의 표준장비가 되었다.
 
==기능==
 
Blue Box에 조종사가 탑승하고 비행 교관, 강사가 주변에서 비행 상황을 부여, 그 상황에 따른 대응 훈련을 하는 형태였다. 비행기의 [[3축 운동]]을 재연하고 비행기의 계기도 실제와 같이 작동했다. [[실속]] 직전읨 상황, [[랜딩기어]] 과속, 회전하면서 추락하는 상황 등의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부여된 상황에 대응한 [[조종사]]의 조치는 강사가 볼 수 있는 기록으로 남겨졌으며 그 결과를 평가하고 피드백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참고==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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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airtravelinfo.kr/air_tip/1409969 사상 최초의 비행 시뮬레이터 'Link Trainer, 블루박스']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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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0일 (토) 19:19 판

최초의 비행 시뮬레이터 Link Trainer
특허(1930년)

Link Trainer

세계 최초의 비행 시뮬레이터다.

소형 모형 비행기 형태로 몸통 색상이 청색이고, 생산일정을 단축하기 위해 후기 모델부터 날개를 제거하자 마치 청색 덩어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Blue Box'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발명

조종사이기도 했던 Edwin Albert Link(1904년 7월 26일 生)이 비행훈련 부족, 제한 등을 해결하고자 발명한 것으로 1930년 특허를 내고 Link Trainer를 제작, 판매하며 비행 시뮬레이터의 표준이 됐다.

개발

16세에 비행훈련을 시작해 조종 면허를 획득한 Edwin은 항상 적은 훈련량이 불만이었다. 날씨나 강사의 제한 등을 극복하고 비행훈련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부친의 오르간 공장(The Link Piano and Organ Company)에서 일하며 오르간의 패달, 공압 시스템 등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을 시작했다.

1929년, 비행자세를 제어하고 비행감각을 익힐 수 있는 조종석과 조종장치로 구성된 비행기 모형(동체) Pilot Maker를 개발했다. 비행훈련에 효과적이라 판단했지만 외부의 반응은 냉담했다. 자신의 Link Flying School에서 운용하면서 다른 몇 비행학교에서도 사용했지만 판매는 부진했다. 할 수 없이 개발한 시뮬레이터를 일부 놀이공원의 놀이장비(기구)로 판매하기도 했다. 수요가 가장 많은 미 육군항공대 앞에서 시연을 보였지만 긍정적인 결과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시뮬레이터 필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1934년 미 육군항공대가 정부와 계약을 맺고 항공우편을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계기비행에 익숙하지 않은 조종사들이 악천후 등 비정상적 상황에 처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80일도 안되는 기간동안 12명이나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됐다.

미 육군항공대는 문제 해결을 고민하던 중 Link Trainer 시뮬레이터 시연을 다시 검토했고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대당 3,500달러 Link Trainer 6대를 구매했다.

첫 번째 모델인 C-3를 개량한 AN-T-18 (Army Navy Trainer model 18) D2 버전은 캐나다, 영국공군을 위해 생산된 시뮬레이터였으며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판매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1939년~1945년) 기간 중 여러나라 조종사 훈련에 사용되었다. 영연방 항공훈련계획에 정식으로 포함될 정도로 효과를 인정받았으며 미국을 비롯해 연합국 거의 모든 비행학교의 표준장비가 되었다.

기능

Blue Box에 조종사가 탑승하고 비행 교관, 강사가 주변에서 비행 상황을 부여, 그 상황에 따른 대응 훈련을 하는 형태였다. 비행기의 3축 운동을 재연하고 비행기의 계기도 실제와 같이 작동했다. 실속 직전읨 상황, 랜딩기어 과속, 회전하면서 추락하는 상황 등의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부여된 상황에 대응한 조종사의 조치는 강사가 볼 수 있는 기록으로 남겨졌으며 그 결과를 평가하고 피드백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참고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