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k Trainer: 세계 최초의 비행 시뮬레이터(1930년)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소형 모형 비행기 형태로 몸통 색상이 청색이고, 생산일정을 단축하기 위해 후기 모델부터 날개를 제거하자 마치 청색 덩어리처럼 보인다고 해서 'Blue Box'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시뮬레이터는 1만 대 이상 생산되어 2차 세계대전 기간 중 50만 명 이상 훈련을 받은 비행 시뮬레이터의 원조다.
이 발명품은 2000년, 미국 기계엔지니어협회(AMSE)가 선정하는 '역사적 기계공학 분야 이정표(Historic Mechanical Engineering Landmarks, 2020년 기준 275개)' 걸작(발명품) 리스트에 포함되었다.
발명[편집 | 원본 편집]
조종사이기도 했던 Edwin Albert Link(Ed Link, 1904년 7월 26일 生)이 비행훈련 부족, 제한 등을 해결하고자 발명한 것으로 1930년 특허를 내고 Link Trainer를 제작, 판매하며 비행 시뮬레이터의 표준이 됐다.
개발[편집 | 원본 편집]
16세에 비행훈련을 시작해 조종 면허를 획득한 Edwin은 항상 적은 훈련량이 불만이었다. 날씨나 강사의 제한 등을 극복하고 비행훈련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부친의 오르간 공장(The Link Piano and Organ Company)에서 일하며 오르간의 패달, 공압 시스템 등에서 힌트를 얻어 개발을 시작했다.
1929년, 비행자세를 제어하고 비행감각을 익힐 수 있는 조종석과 조종장치로 구성된 비행기 모형(동체) Pilot Maker를 개발했다. 비행훈련에 효과적이라 판단했지만 외부의 반응은 냉담했다. 자신의 Link Flying School에서 운용하면서 다른 몇 비행학교에서도 사용했지만 판매는 부진했다. 할 수 없이 개발한 시뮬레이터를 일부 놀이공원의 놀이장비(기구)로 판매하기도 했다. 수요가 가장 많은 미 육군항공대 앞에서 시연을 보였지만 긍정적인 결과는 이끌어내지 못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시뮬레이터 필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1934년 미 육군항공대가 정부와 계약을 맺고 항공우편을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계기비행에 익숙하지 않은 조종사들이 악천후 등 비정상적 상황에 처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80일도 안되는 기간동안 12명이나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됐다.
미 육군항공대는 문제 해결을 고민하던 중 Link Trainer 시뮬레이터 시연을 다시 검토했고 효과를 기대하며 대당 3,500달러 Link Trainer 6대를 구매했다.
첫 번째 모델인 C-3를 개량한 AN-T-18 (Army Navy Trainer model 18) D2 버전은 캐나다, 영국공군을 위해 생산된 시뮬레이터였으며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판매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1939년~1945년) 기간 중 여러나라 조종사 훈련에 사용되었다. 영연방 항공훈련계획에 정식으로 포함될 정도로 효과를 인정받았으며 미국을 비롯해 연합국 거의 모든 비행학교의 표준장비가 되었다.
전쟁 기간 중 1만 대 가량 생산되어 50만 명 이상이 이 시뮬레이터를 통해 비행훈련을 받았다.
기능[편집 | 원본 편집]
Blue Box에 조종사가 탑승하고 비행 교관, 강사가 주변에서 비행 상황을 부여, 그 상황에 따른 대응 훈련을 하는 형태였다. 비행기의 3축 운동을 재연하고 비행기의 계기도 실제와 같이 작동했다. 실속 직전의 상황, 랜딩기어 과속, 회전하면서 추락하는 상황 등의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부여된 상황에 대응한 조종사의 조치는 강사가 볼 수 있는 기록으로 남겨졌으며 그 결과를 평가하고 피드백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Ed Link가 설립한 Link Company는 1954년 General Precision에 매각되었다가 현재는 L3Technologies에 합병(2018년)되어 'Link Training & Simulation'라는 이름으로 조종사 교육 및 시뮬레이터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참고[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