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린드버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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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사 | |
출생 | 1902년 2월 4일 |
사망 | 1974년 8월 26일 ( 72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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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린드버그(Charles Augustus Lindberg): 최초의 대서양 단독 횡단 비행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항공개척 시기에 사상 최초로 대서양 횡단 '단독' 비행에 성공하면서 비행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미국 비행사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최초의 단독 대서양 횡단 비행[편집 | 원본 편집]
1919년 뉴욕 호텔 거부였던 레이몽 오티그(Raymond Orteig)는 대서양 횡단 비행 성공에 25,000달러 상금을 걸었다. 1926년 9월 21일 프랑스 비행사(René Fonck)가 시도(스콜스키 S-35 비행기로 뉴욕 루즈벨트 필드에서 이륙)했지만 추락해 실패했다. 1927년 4월 26일 미군 해군 비행사가 시도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5월 8일에는 프랑스 비행사가 도전했지만 비행 중 실종되고 말았다.
린드버그는 이 역사적인 비행 도전을 위해 어렵게 자금 18,000달러를 모아 소형 단발 비행기(Spirit of St. Louis)를 제작했다. 1927년 5월 20일 롱 아일랜드 루즈벨트 필드에서 이륙해 33시간 29분 비행한 끝에 다음날인 21일 오후 10시 22분 약 15만 명의 군중이 기다리고 있던 프랑스 파리 르부르제 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하면서 단독 무착륙 비행에 성공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는 항속거리 능력을 위해 비행기 중량을 최대한 줄였다. 예비 조종사, 낙하산 등의 조건을 생각하면 비행기가 커지고 소비되는 연료도 증가하기 때문에 횡단 비행이 어려워질 것이라 판단했다. 실제 조명탄이나 무전기, 낙하산 등을 탑재하지 않았고 먹을 것조차 충분히 싣지 않았다. 대신 최대한 연료를 많이 실었다. 이 탓에 실제 비행에서 이 연료통 탓에 시야를 가려 어렵게 비행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33시간 동안 누구도 교체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잠을 깨워가며 33시간 동안 비행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6월 16일 올테이그 상을 수상했으며 1927년 12월에는 전쟁 영웅에게 수여하는 명예 훈장을 받았다. 린드버그 이전에도 대서양 횡단 비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린드버그의 비행이 유명한 이유로 '사상 최초의 단독 비행'이라는 점이 가장 크다. 하지만 당시 2만 5천 달러 상금이 걸렸던 대서양 횡단 비행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었고 이전 다른 이들의 도전이 여러 차례 실패하면서 대서양 횡단 비행 성공으로 누가 상금을 획득할 것인지 대중의 관심이 컸기 때문에 그는 일약 전 세계적인 유명 인물이 될 수 있었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1932년 3월 린드버그의 아들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생후 20개월 된 찰스 린드버그 주니어가 유괴되었고 5만 달러 몸값을 요구한 범인의 요구에 응했지만 결국 아들은 린드버그 집 주위에서 죽은 채 발견됐다. 범인은 독일 출신의 하우프트만으로 밝혀졌으며 1936년 사형에 처해졌다.
참고[편집 | 원본 편집]
각주
- ↑ 최초 대서양 횡단 비행은 이미 1919년 있었으며 이후 다수의 사람들이 횡단 비행에 성공했으나 단독 비행은 린드버그가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