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히드

항공위키

록히드(Lockheed Corporation)[편집]

1926년 앨런 록히드(Allan Lockheed)에 의해 설립된 항공기 제조사(Lockheed Aircraft Company)다. 1928년 한 해 동안 백만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으며 300명 이상 직원을 고용해 80여 종 항공기를 생산했다.

대주주였던 프레드 킬러(Fred Keeler)가 주식 87%를 디토로이트항공(Detroit Aircraft)사에 매각하면서 앨런 록히드는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디트로이트항공이 도산하면서 록히드는 매물 시장에 나와 매각되었고 캘리포니아 주 버뱅크로 회사를 이전하면서 사명도 록히드 주식회사(Lockheed Corporation)로 바꿨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 록히는 미 육군동신단 항공반, 영국 왕립 공군에 허드슨 폭격기를 주로 납품했다.

1995년 마틴 마리에타(Martin-Marietta)社와 합병해 록히드 마틴으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편집]

록히드의 성장은 2차 세계대전이었다. 개전과 동시에 군의 요구에 따라 P-38, B-17, 허드슨 폭격기, 벤추라 항공기 등을 납품하면서 단번에 미국 전시 계약액 10위권 업체가 되었다.

전후에는 제트기 개발에 앞장 서면서 성장을 가속화했다. 1943년 설치한 록히드 개발부(Lockheed Advanced Development Division)는 록히드의 성장을 이끌었다. 40년대부터 슈팅스타(Shooting Star) P-80을 개발해 F-80이라는 이름으로 대활약했다. 1950년대에는 U-2 고고도 정찰기, 1960년대에는 SR-71(블랙버드) 정찰기, 1970년대 F-117(나이트호크) 스텔스 정찰기 등 시대를 앞서가는 차세대 항공기를 잇달아 내놓으며 기술을 선도했다.

록히드 스캔들[편집]

하지만 야심차게 개발한 삼발 엔진 제트 여객기 록히드 L-1011(트라이스타)가 엔진 제작사 롤스로이스의 재정난으로 엔진 납품이 늦어지면서 출고가 지연돼 신뢰를 잃고 판매 부진에 시달렸다. 여기에 '록히드 스캔들(Lockheed Scandal)'이 벌어졌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항공기를 팔기 위해 여러 나라(서독, 이탈리아, 네덜란드, 일본)에 뇌물을 뿌린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큰 정치적 타격을 입으며 파산 일보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록히드 이사회 의장 다니엘 휴턴과 칼 코치안이 1976년 2월 사임했으며 1977년 12월 지미 카터 대통령이 서명한 해외부패방지법(Foreign Corrupt Practices Act)을 만든 계기가 됐다.

록히드 마틴[편집]

1992년 제너럴 다이내믹스사의 항공기 사업부문과 포트워스 시설을 인수하고 1995년 마틴 마리에타(Martin-Marietta)를 100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록히드 마틴(Lockheed-Martin Corporation)社가 되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