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히드 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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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히드 사건(Lockheed Scandal)[편집]

미국 방산업체인 록히드사가 항공기를 판매하기 위해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여러나라에 뇌물을 뿌린 사건이다.

L-1011 트라이스타 판매 부진과 함께 이 스캔들로 인해 록히드社는 파산 일보 직전까지 몰리기도 했다.

개요[편집]

이 사건의 전말은 록히드社가 재정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연방정부에 자금 지원 요청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1971년 긴급대출법을 통해 최대 2억5천만 달러까지 연방보증 민간 대출을 집행했다. 다행히 록히드는 위기를 무사히 넘겼지만 1975년 록히드가 해외에 비용을 집행한 것이 문제가 있는지 조사하게 됐고 프랭크 처치(Frank Church) 상원위원이 이끄는 소위원회는 록히드社가 항공기 판매를 위해 대상국 우호 인물들에게 돈을 지급(뇌물)했다고 결론지었다. 위원회는 이 과정에서 사용된 금액은 총 2200만 달러에 달했다고 확인했다.

세부 내용[편집]

서독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국방부 장관과 그 당은 F-104G 스타파이터 900대 구입 대가로 최소 1천만 달러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며 록히드 방문 시 여행비 일부를 지원받았던 것만 확인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C-130 헤라클레스 수송기 도입과 관련해 각 당 정치인들이 뇌물을 수수했다고 알려졌다. 이로 인해 국무총리 마리아노 소문과 대통령 조반니 리온이 1978년 6월 사임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일본에서도 민간용 제트 여객기 L-1011를 판매하기 위해 전일공수를 포함해 일본 총리 다나카 카쿠에이(Tanaka Kakuei)에게까지 뇌물을 뿌렸다. 록히드는 ANA와 계약 체결하기 위해 24억 엔을 지불했는데 그중 5억 엔을 국무총리대신인 다나카가 받았다. ANA 관계자가 1억6천만 엔, 로비 주역 고다마 요시오가 17억 엔을 받았다. 다나카 전 총리는 1976년 7월 27일 체포되었으나 8월 2억 엔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후 1983년 10월 12일 도쿄법정에서 외환관리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뇌물 관련해서는 유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4년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1993년 그가 사망할 때까지 집행되지 않았다. 재판은 다나카 사후에도 이어져 1995년 2월 최고재판소(대법원)가 원심을 확정함으로써 다나카 유죄가 확정되고 사건은 19년 만에 종결됐다.

네덜란드 Bernhard 왕자(줄리아나 여왕의 남편)는 F-104 구매 계약과 관련해 110만 달러 뇌물을 받았다. 당시까지 각종 기업 이사회, 위원회에 기여하고 네덜란드 경제 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는 이 사건으로 여러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록히드는 1970년~1975년 사이에 사우디아라비아 무기 중계상인 Adnan Khashoggi에게 1억6 백만 달러 커미션을 지불했다.

여파[편집]

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록히드 이사회 의장 Daniel Haughtom과 부회장 Carl Kotchian은 1976년 2월 13일 사임했다. 이 스캔들은 지미 카터 대통령이 서명한 해외부패방지법(Foreign Corrupt Practices Act)이 공론화되는데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1977년 미국은 미국인과 미국 기업이 외국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는 것을 불법으로 명문화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