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리오 11호
루이 블레리오가 개발한 비행기로 사상 처음으로 영국해협 횡단
개요[편집 | 원본 편집]
항공개척 시대, 프랑스 항공 개발자 루이 블레리오가 개발한 비행기로 1909년 7월 25일 영국해협을 가로질러 최초로 비행한 동력 비행기다. 항공기 개척 시대의 가장 유명한 업적 중 하나로 현대 비행기의 모범이라 평가된다. 총 103대 제작·판매되어 많은 국가에서 1차 세계대전 초반까지 군용기로 사용할 만큼 큰 성공을 거둔 당대의 대표적인 항공기가 됐다.
사상 처음으로 전투에 투입된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개발[편집 | 원본 편집]
블레리오가 1908년 성공적으로 비행한 블레리오 8호를 개량한 버전으로 수동 조이스틱과 발로 조종하는 방향타 조합을 최초로 고안해 적용한 단엽기다.
- 1908년 12월, 파리 에어로살롱에 공개
- 1909년 1월 23일, 이시레물리노에서 첫 비행
- 1909년 5월 27일, 보다 안정적인 25마력(19kW) 안자니 3기통 팬 엔진으로 교체
- 1909년 6월 26일, 36분 55초 비행
- 1909년 7월 13일, Aero Club de France가 개최한 Prix du Voyage에서 우승
영국해협 횡단[편집 | 원본 편집]
1909년 7월 25일, 칼레에서 도버까지 영국해협을 횡단해 비행하며 Daily Mail이 내건 상금 1,000파운드(현재 가치로 약 12만 파운드) 상금을 받았다.
나침반 없이 비행하면서 의도했던 항로에서 동쪽으로 벗어났고 강한 바람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도버에 이르렀다. 강한 바람 등으로 정상적인 착륙이 불가능했다. 랜딩기어와 프로펠러 블레이드가 산산조각 날 정도로 불시착에 가까운 착륙이었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비행에 총 36분 30초가 소요됐다.
이후[편집 | 원본 편집]
많은 부분이 파손된 비행기는 긴급 수리하여 런던의 Selfridges 백화점에 전시되었다가 프랑스 파리의 Musée des Arts et Métiers에 매각되었다.
영국해협 횡단 비행 후 유명해지며 블레리오 11호를 복제, 제작해 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그해 9월까지 총 103대 주문을 접수했다.
1910년부터 연이은 사고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했다. 조사 결과 날개가 받을 수 있는 힘을 견디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지만 와이어 강도를 높여 안정성을 높이면서 블레리오 11호 평판은 더 개선됐다. 하지만 프랑스 군은 1912년 2월, 군용 비행기로서는 단엽기 사용을 금지했다.
블레리오는 비행기 제작 판매와 함께 프랑스와 영국에 조종학교를 세웠다.
초기 모델은 1910년 이탈리아와 프랑스 군에 판매되었으며, 이탈리아 군에 의해 북아프리카와 멕시코 등의 작전에 투입됐다. 1911년 북아프리카 투입은 사상 처음으로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체가 전투에 투입된 사례였다. 영국 왕립공군도 1912년 도입하는 등 1차 세계대전 초기에는 프랑스 8개 비행대, 영국 6개 비행대, 이탈리아 6개 비행대가 주로 정찰 임무용으로 활용했으며 일부는 훈련기, 폭탄을 실은 폭격기로도 운용했다.
참고[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