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창

항공위키
장덕창
Jang-deokchang.jpg
비행사, 군인
출생 1903년 5월 9일
사망 1972년 7월 11일
( 69세 )

장덕창(張德昌): 대한민국 최초의 직업 비행사이자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인물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안창남에 이어 두 번째로 조종사 자격을 취득한 인물로,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 비행사이자 제4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광복 후 항공부대창설의 주축이 됐으며 이후 공군참모총장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공군현대화의 초석을 깔았다.[1]

생애[편집 | 원본 편집]

1922년 3월 일본항공국에서 실시한 비행면허시험에 합격해 3등비행사 면장을 취득했다.

11월 초 일본 최초의 일본민간항공회사인 일본항공수송연구소에 입사했다. 비행사로는 일본인조차 취직이 힘들던 그 시대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민간 항공사의 직업 비행사가 된 것이다. 실력을 인정받아 수석 비행사가 됐고 사장인 이노우에 나가이키의 딸(사치코)과 결혼했다.

1925년에는 경남 통영에서 출발해 목포 상공을 거쳐 6월 12일 경성 하늘에 도착해 비행 시범을 보였지만 두 번째 비행에서 프로펠러가 정지되면서 불시착했다.

그는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일원이기도 했다.

1945년 해방 후 8월 17일 조직된 조선항공대에서 부회장 직책을 맡았다. 9월 19일 미군정이 시작되자 서웅성, 김석환 등과 함께 협회명칭을 조선항공협회로 바꾼 후 일본군 비행기와 부대시설 인수에 착수했지만 실패했다.

1948년 3월 조선경비대 보병학교에 입교해 5월 14일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군정청은 계획대로 5월 15일 1여단사령부가 있던 수색에 통위부 직할의 항공기부대를 창설했고 다른 장교와 군속들 105명과 함께 배속되었다. 이들을 통상 '공군 창설 105인'이라고 부른다.

1948년 10월 1일, 공군본부가 창설되어 육군에서 완전히 분리 독립했으며 그와 함께 장덕창은 공군독립기지 사령관에 임명됐다.

한국전쟁 당시 조종사로 참전해 6,261회 출격하며 전공을 세워 1953년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그는 그해 아시아 최초로 1만 시간 비행이라는 기록을 수립하기도 했다.

1955년 12월 중장 진급과 함께 제4대 공군참모총장에 임명됐다.

1959년 예편 후 1960년 고려항공을 설립했지만 면허 획득에 실패하면서 민항 분야에는 진출하지 못했다.

훈장[편집 | 원본 편집]

은성을지무공훈장, 태극무공훈장,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등을 받았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