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륙 직전 비상구 문을 개방하는 사건 벌어져
- 비상구 좌석에 승객 배정하지 않는 것이 대책일 수 없어
- 배정 적정성 파악은 물론 시스템적인 방비책이 필요
다양한 교통수단 가운데 항공기는 조금 특별하다. 다르다.
일단 움직이면 매우 큰 리스크를 가진다. 다른 지상 교통수단은 문제가 발생하면 멈춰 서기라도 하지만 비행기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항공교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다. '고객은 왕'이라고 여길만큼 중요하게 여기는 서비스도 안전을 넘어설 수 없다. 안전을 위해서는 서비스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들은 '고객은 왕'을 금과옥조로 여긴다. '무조건 고객이 옳다'는 이상한 생각이 가득하다. 합리적인 설명을 불친절로 여긴다. 이에 대한 고객의 불만은 곧 서비스 품질 저하로 인식하고 현장 직원들을 쥐 잡듯 하기 일쑤다.
안전을 위해서 안되는 건 안되는 거다.
항공여행 시 명당 자리로 인식되는 곳이 비상구 좌석이다. 출입구가 있다보니 자연스레 좌석 앞 공간이 넓직하다. 발 뻗기도 좋고 드나들기도 좋다. 이렇다 보니 '다리가 불편'해서 넓은 자리를 원하거나 '아이가 있어서' 또는 조금 더 '편안한 자리'를 원하는 이들이 이런 좌석을 요구한다.
지금은 이런 좌석들이 대부분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앉는 좌석이지만 그렇지 않았던 이전에는 그 요구 정도가 심했다. 당연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는 듯 불만을 쏟아내기 일쑤였다. 서비스가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에 안전을 위해 법적인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고 나서야 이용자들의 인식이 조금은 나아졌다. (아니 법을 꺼내드니 어쩔 수 없다는 태도가 대부분이지만..)
비상구 좌석에 앉는 이는 비상 시 승무원을 도와 탑승자들의 탈출과 대피를 도울 의무가 있다. 따라서 비상구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이 필요함은 물론 익숙치 않은 조작을 승무원의 안내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언어 소통 능력이 필요하다. 법적으로도 이런 제한사항을 지키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확인하도록 기준을 만들어 놓았어도 확인 가능한 외부적인 조건 외 탑승객의 성향, 정신적 상태까지 알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며칠 전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비상구 개방 착륙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범인(30대 남성)의 외부적인 조건(신체적, 언어적 능력)은 비상구 좌석에 앉는 데 부족한 점이 없다. 하지만 그가 어떤 심리 상태였는지, 어떤 성향이었는지 파악은 불가능하다. 짧은 시간에 몇 가지 질문 만으로 위험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일부에서는 비상구 좌석을 돈 받고 '아무에게나' 판매·배정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한다. 비판의 촛점이 잘못됐다. 돈 받고 배정한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배정하는 것이 아니다. 법적인 가이드라인을 준수해야 하므로 탑승수속 시 검증한다. 온라인으로 배정받은 경우에는 공항에서, 객실에서 다시 한번 확인한다. 안전은 돈을 받는다고 해서 양보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항공기 비상구 문이 한두 번의 조작으로 쉽게 열리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한다. 고리 등 추가 안전장치를 두어 어렵게 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는 모르는 소리다. 비상문은 말 그대로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최대한 신속히 탈출하기 위한 용도다. 열기 어려워지는 순간 그 존재 의미가 없다. 조작에 10여초 소요하느라 몇 십명의 인명이 희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비판이 쏟아지자 '비상구 좌석'이 문제라는 이상한 대안이 나왔다. 사건의 당사자인 아시아나항공은 비상구 좌석을 배정하지 않는 방안을 내놨다. 그런데 전부가 아니라 비상구 바로 옆에 있는 좌석 한 개다. 승객이 좌석벨트를 풀지 않고도 손이 닿는다는 이유에서다.
좌석벨트 풀지 않은 상태에서 비상구 문 조작 레버에 손이 닿았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발생한 것일까? 해당 범인이 손이 닿지 않는 (옆) 좌석에 앉았더라면 이런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그는 빨리 내리고 싶어서라고 문을 연 이유를 말했다고 한다. 손이 닿아서 충동적으로 문을 연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뭔가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항공사 입장에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안전대책이라는 것이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 비상구 좌석에 앉는 사람들을 잠재적인 가해자로 인식하는 불행한 일은 막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항공기 문은 비행 중에는 기체 내외부 압력 차이로 인해 문이 열리지 않는다. 인력으로 열 수도 없고 시스템 적으로도 개방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비행고도가 낮아져 지상 근처에 이르면 기체 내외 압력차가 줄어들어 인력으로도 비상구 문을 열 수 있다.
최신 기종들은 '비행 중 자동잠금장치'가 적용되어 있어 항공기가 지상에 착륙하지 않는 한 문이 열리지는 않지만 사건이 발생한 기종(A321-200)에는 불행히도 이런 장치가 없다.
칼이 사람을 해칠 수 있는 흉기지만 필요하기 때문에 없애지 않고 잘 보관하는 방법을 찾는 것처럼 항공기도 필요하고 비상구 문도 필요하기에 최선의 대비책을 찾아야 한다.
상식적으로 비행 중인 항공기 문을 열려고 하는 정신나간 사람이 있으리라고 예상하기 어렵지만 실제 왕왕 존재한다. 대부분은 지상에서 문을 열거나 높은 고도에서 비행 중에 (열지도 못하는) 문을 열려고 시도하는 건들이지만 말이다.
이번 건은 사상 초유의 사건일 정도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현실적이지는 않지만) 안전요원인 승무원을 더 태우는 등 감시 대책을 강구할 수도 있고 비상구 좌석 승객을 대상으로 질문 등을 통해 성향 파악에 더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비상구가 비상탈출 등 본연의 역할에 충실함과 동시에 그 외 상황에서는 임의 조작 등을 방지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시스템적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