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3년 사상 처음 온라인 항공 예약 시스템 등장

• ReserVec, 더 발전하지 못하고 SABRE에 뒤져

우리는 예약이라는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을 지키며 살아간다. 

한 두사람과의 약속이라면야 수첩에 메모 정도로 충분하겠지만, 수천·수만명과의 약속은 수기로는 불가능하다. 항공 예약시스템 역시 이런 배경에서 출발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민간 항공교통은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전쟁에 동원됐던 항공기들이 민간 수송으로 활용되고 국가간의 교역과 비즈니스가 활발해지면서 항공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급증했다.

문제는 이렇게 급증하는 항공 이용객을 빠르고 정확하게 예약을 받고 항공편을 지정하는데 적지 않은 인력이 필요했고, 많은 시간도 필요했다는 점이다.

▩ 항공편 이용자 급증, 항공편 카드 수기 예약방식으로 감당 못해

트랜스-캐나다항공(TCA, Trans-Canda Air Lines, 현재 에어캐나다 전신) 토론토 예약센터에서는 하나의 예약을 완성하는데 3~7통의 전화통화가 필요했다. 첫 예약 전화를 받은 후 커다란 벽면을 가득 채운 보드의 한달치 항공편 스케줄을 보고 일일이 예약 하나씩 만들어야 했다. 캐비넷에서 'Flight Card'를 꺼내 해당 항공편에 예약자 이름을 기입하는 방식이었기에 전화 접수 즉시 항공편이 만석인지도 알기 어려웠으며 동시에 다른 예약을 받을 수도 없었다.

트랜스-캐나다항공 예약 센터(1950년대)

한편 미국 아메리칸항공(AA, American Airlines)은 수많은 예약을 일일이 물리적으로 기록하기 어려운 점을 극복하기 위해 저장(Storage) 시스템을 이용하기로 했다. 마그네틱 특성을 이용한 드럼 메모리(Drum Memory)를 통해 'Reservisor'라는 시스템을 1956년에 개발했고 여객기 약 2천편에 해당하는 데이타를 기록할 수 있었다. AA는 이 시스템을 다른 항공사는 물론 쉐라톤 등과 같은 호텔, 굿이어 등 예약, 재고관리가 필요한 기업에 시스템을 판매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단순한 저장 장치에 불과했다.

▩ 트랜스-캐나다항공, 온라인 예약 시스템 ReserVec

TCA는 AA의 Reservisor가 단순한 저장 매체라는 점과 에러가 잦은 점, 그리고 결정적으로 해당 시스템에서 자료를 확인하려면 Reservisor 담당 에이전트에게 다시 요청해서 확인해야 하는 한계를 확인했다.

카드 리더(Transactor) 시연

TCA는 자사 기술자인 Lyman Richardson을 통해 컴퓨터화된 솔루션을 생각하게 된다. 1952년 토론토 대학의 FERUT를 기반으로 연구를 시작해 AA의 Reservisor가 가지고 있던 병목현상 등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고 Richardson은 다른 기술자들과 함께 Ferranti Canada에 연구진을 구성해 일종의 펀치카드(Punched Card) 방식을 착안해 냈다.

카드에 나뉘어진 칸에 연필로 색을 칠해 일련의 정보를 입력하고 이를 전화선과 연결된 카드 리더(Transactor)를 통해 신속하게 중앙으로 정보를 취합하는 방식이었다. (현재 로또 카드 번호선택 방식과 동일)

TCA는 75000달러를 투자해 6대 시제품을 개발·구축했는데, 이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분산된 어떤 장소에서도 카드 리더(Transactor)만 있으면 예약을 접수하고, 변경, 취소, 조회 등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현재의 예약 방식과 유사한 온라인 예약 기반이 마련된 셈이었다.

1959년 TCA는 당시 2백만달러(2000년 기준 약 1천2백만달러 상당)를 투자해 350대로 확장했으며 이후 두개의 CPU가 달린 Gemini 컴퓨터 시스템 포함해 1960년 ReserVec이라 명명하고 개발에 들어갔다. 그리고 1963년 1월 24일 마침내 ReserVec 시스템이 가동을 시작했다.

ReseVec(Reservation Electronically Controlled)은 '전자 예약 통제 시스템' 정도로 불릴 수 있는 시스템으로 TCA의 예약센터 직원수를 230명에서 90명으로 줄였으며, 그 무엇보다 현장에서 예약을 하고 조회하는데 불과 몇초만에 가능하게 된 세계 최초의 획기적인 '항공 온라인 예약 시스템'이 탄생한 것이다.

ReserVec 시스템

▩ ReserVec 발전을 막은 건 어처구니 없는 결정 때문

AA가 계획하고 추진했던 SABRE는 1953년 검토를 시작해 1957년 개발을 시작했지만 1963년 12월이 되어서야 예약 시스템으로 선을 보이게 되었다. ReseVec이 4백만 달러를 들여 단 2년 만에 개발된데 비해 SABRE는 거의 10년이나 걸린 셈이었다.

ReserVec을 개발한 Ferranti-Packard는 이 시스템을 다른 항공사에 판매하려고 했다. 당시 미국 시장은 IBM, Univac 등과의 치열한 경쟁 때문에 포기하고 유럽시장 진출을 모색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장애를 만나 좌절하게 된다. 다름 아닌 영국 지주회사였던 Ferranti UK의 결정 때문이었다. ReserVec이 영국에서 개발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ReserVec을 신뢰하지 않고 대신 캐나다 개발팀을 영국에 불러들여 새로운 시스템(Orion II) 개발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끝나면서 ReserVec이라는 시스템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ReserVec이 다른 항공사도 구매할 수 있는 제품으로 기획되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 데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ReserVec이 고객의 정보를 완벽하게 자동으로 저장하지는 못하고 수동으로 처리하거나 보완 시스템이 필요했다는 것이었다. 이후 개발된 Pioneer에서는 ReserVec이 가진 단점이 개선되었지만 널리 확산되지는 못했다. 만약 ReserVec 시스템 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면 항공 예약 시스템의 역사는 바뀌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최초 항공 온라인 예약 시스템 ReserVec

결국 이후 개발된 SABRE가 비록 ReserVec 보다는 시장에 늦게 선보였지만 보다 앞선 기능과 지속적인 개발에 힘입어 항공 부문을 포함한 여행 관련 IT 시스템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2000년에는 AA로 부터 분사해 독립적인 여행 관련 IT 기업 강자로 우뚝서게 되었다.

1963년 오늘(1월 24일)은 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항공 예약 시스템인 ReserVec을 세상에 선보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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