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다.
다니는 교회의 청년 하나가 도움을 부탁해 왔다. 8월에 10여명이 단기선교를 다녀오려고 하는데, 항공권을 좀 저렴하게 구입할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내가 항공사에 근무하는 것을 알고 있는 그 청년의 부탁은 너무나 당연해 보였다. 항공사 직원에게 부탁하거나 할인받을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을 알고 있어 도움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실제 내가 그 청년에게 도움줄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하기에는 설명하기가 구차했다. 기껏해야 아는 여행사를 소개시켜 주는 것 외에는 도움 줄 마땅한 것이 없었다.
어라.. !!!
항공사 다닌다면서, 항공권 구입하려는 사람에게 여행사를 소개시켜주다니?
항공사에 근무하다보니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종종 주변 사람들로부터 항공권을 저렴하게 구입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하지만 난감하다. 사실 항공사 직원으로서 경우에 따라 본인은 저렴하게 항공권을 이용할 수는 있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저렴한 항공권을 구해주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아니 곤란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항공사에서 직접 판매하는 것은 대부분 (할인되지 않은) 정상 가격 항공권 뿐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조건에 따라 할인항공권도 있기는 하지만 그리 다양하지 못하다.) 이런 정상 가격의 항공권을 싸다고 소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할인 항공권 구입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여행사 찾아갈 것을 권한다.
그럼 왜 항공사에서는 여행사처럼 저렴한 항공권을 판매하지 않는 것일까?
항공권, 대부분 간접판매 방식
판매 대리점 여행사
교통 수단으로서 항공기가 이용되기 시작하면서 일반 수요자를 대상으로 항공권 판매에 들어간다. 그러나 항공운송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먼거리를 이동하는 것이니만큼 수요자도 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지 않고 넓은 지역에 불규칙하게 분포한다.
이렇게 넓게 분포되어 있는 항공 수요자에게 항공권을 항공사가 직접 판매하기는 불가능했다. 직접 판매한다는 것은 지점을 수십, 아니 수백 군데를 직접 개설, 운영해야 한다. 아니 그나마 국내 만이라고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전 세계를 대상으로 모든 지역에 판매지점을 설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자연 발생한 것이 판매 대리점이다. 요즘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여행사가 그 대표적인 판매 대리점이라고 할 수 있다. 판매 대리점은 항공사를 대신해 항공권을 판매해주고 항공사로부터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받는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할인 항공권 등장하기 시작
기본적으로 항공권의 유효기간은 1년이다. 최초 발행한 일자로부터 1년 안에 사용하면 되고, 구간이 2개 이상인 경우는 첫번째 구간 사용일자로부터 다시 1년 안에 사용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최장 2년까지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1년 유효기간의 항공권이 필요하지는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6개월, 3개월, 1개월 정도 유효기간이면 충분한 이용자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수요자를 공략하기 위해 유효기간을 단축한 항공권이 등장한다. 당연히 항공요금은 내려간다.
무려 75% 싸다는 항공권 판매 광고
또 항공권은 언제든지 환불이나 변경이 가능한데, '환불 안되는 조건, 일자 변경 안해도 좋아' 라고 외치는 고객들을 위해 또 그런 항공상품을 내놓는다. 그럼 여기서 또 항공요금은 하락한다. 이런 식으로 여러가지 제약 조건이 생기면서 항공요금은 정상 요금으로부터 점차 하락하게 되는 것이다.
종합 여행상품 취급으로 항공권 할인 능력 다양해져
최초 판매 대리점은 단순히 항공사를 대신해 항공권을 판매해주는 역할에 불과했지만, 점차 항공 구간을 제외한 나머지 여행 기간이나, 일정을 직접 만들어내는 여행사로 역할이 바뀌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비싼 항공권은 여행객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부담으로 남아있다.
여행사들은 항공권 판매 수수료 외에 다른 부분 (여행 상품) 을 통해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여행사들과의 경쟁에서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자신들이 벌어들이는 항공권 판매 수수료만큼 항공요금을 할인해서라도 판매하게 된다.
이렇게 되자 최초에는 항공사나, 판매 대리점 (여행사) 이나 판매하는 항공요금이 같았으나, 점차 판매 대리점 판매 항공요금이 더 저렴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사는 볼륨 디스카운트로 더 저렴한 항공권 판매
항공 수요의 성격도 처음의 개인 위주에서 점차 단체 성격으로 바뀌게 되었다. 비즈니스 목적의 이동은 물론이거니와 여가를 즐기기 위한 단체 항공수요도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런 단체여행의 항공권 구매부터 숙박, 여행 일정 등을 여행자를 대신해 여행사들은 복합상품을 개발하고 항공사로부터는 '항공권을 많이 판매하는' 댓가로 기존보다 더 저렴한 조건으로 항공권을 판매할 수 있도록 유리한 가격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패키지 여행 상품
어디에나 그렇지만 대량으로 상품을 구입하는 경우에는 소위 볼륨 디스카운트 (Volume Discount) 라는 것을 적용한다. 즉 많은 상품을 구입하면 일정액을 할인해서 되돌려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항공사는 판매 촉진을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단체(15명 이상)에 대해서는 한 장의 무료 항공권을 제공하기도 한다.
여행사도 항공사로부터 이런 무료 항공권이나 볼륨 디스카운트를 받게 되면 그만큼 항공권 가격은 또 하락하게 된다.
항공사는 이제 항공권 판매의 주도권을 여행사에 넘겨 준 상태가 된다. 물론 항공사도 단체를 모집해 여행사가 판매하는 만큼 할인해서 항공권을 판매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하다가는 많은 여행사들로부터 소위 '왕따'를 당해 항공권 대리 판매를 보이콧트라도 당해 버리면 항공사로서는 자칫 영업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될 가능성 때문에라도 항공사가 직접 단체 할인 항공권 판매하는 것은 가능한 지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여행사가 항공사보다 더 저렴한 항공권을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항공사도 안정적 판매를 위해 여행사 위탁
항공사도 항공권을 직접 판매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보다는 서비스 등 품질 개선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경향이 짙고, 또한 대량으로 항공권을 팔아주는 여행사를 거래상대로 많이 확보하면 할 수록 직접 판매하는 것보다 훨씬 안정적인 항공권 판매가 가능해진다.
항공사는 이렇게 안정적으로 항공권을 팔아주는 여행사들에게는 또 다른 혜택, 즉 추가로 할인해 판매할 수 있도록 좀 더 나은 조건의 항공권을 제공한다. 이렇게 되면 해당 여행사는 또 더 저렴한 항공권을 판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항공사가 직접 판매하지 않고, 위탁 판매하다보면 유통 마진이나 수수료 등이 발생해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항공요금이 더 비싸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이 위에서 설명한 배경 때문인 것이다. 하기야 이런 양상은 다른 업종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할인 가격의 다양성이 다른 어떤 업종보다 크기 때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
IT 발전은 기존 항공사, 여행사 역할 변화시켜
이제 IT가 커뮤니케이션, 상거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는 시대가 되었다.
IT 발전은 기존 상품 판매 형태와는 완전히 다른 온라인 판매형태를 만들어냈다. 즉,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집에 혹은 사무실에 앉아서 손쉽게 정보를 구하고 상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IT 발전은 항공사, 여행사 어느 쪽에게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까?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오게 할까?
기존의 항공권 판매 형태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여행사에 의한) 간접 판매 형태였다. 따라서 항공권 판매가격의 주도권을 여행사가 쥐고 있었지만, 항공권 온라인 판매가 늘어나면서 점차 그 역할이 바뀌는 양상이다.
온라인 항공권 구매 가능한 시대로
즉, 더 이상 항공사가 여행사에 항공권 판매를 의지할 필요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판매 루트가 온라인이다 보니, 전세계 어느 지역에서, 언제든지 항공권 판매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나타난 이런 현상은 저가 항공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가 항공사의 특징은 항공권이 싸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저가 항공사는 왜 항공권이 싼 것일까?
일단 기본적으로 저가 항공사들은 항공권을 위탁 판매하지 않는다. 아니 수수료를 주고 위탁판매한다면 그만큼 항공요금이 상승하기 때문에 항공요금이 저렴해질 수 없다.
기존 항공사들도 온라인 판매비중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요즘 어느 항공사던,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면 예약과 함께 항공권을 직접 판매하고 있다. 예전엔 직접 항공사를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구매하기 어려웠지만, 온라인으로 형태가 바뀌면서 누구든 손쉽게 항공권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최근 항공사들 홈페이지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예전에 비해서 항공사에서 직접 판매하는 항공권 요금이 다양해졌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이전에는 없던 반짝 세일이라던지, 폭탄 세일이라던지, 특정 기간 할인 판매 등 그 형태가 다양해지고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런 항공사의 항공권 직접 판매는 기존 여행사들의 수익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갈등을 겪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서로의 입장이 대치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과 관련해 이전에도 다룬 이야기지만, 이제 항공업계도 과거의 전통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항공상식 항공사와 여행사는 악어와 악어새?
온라인 판매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점을 감안한다면 항공사의 직접 판매는 점차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사의 역할을 어떤 형태로 바뀌게 될까? 기존의 항공권 위탁 판매보다는 직접 항공/여행상품을 개발하고 코디네이션하는 종합 여행사로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항공사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 즉 여행을 기획하고 새로운 여행지를 개발해 수요를 만들어내는 일 등이 여행사의 미래 모습이 아닐까.
저렴한 항공권을 원한다면 항공권 판매 전문 여행사를 찾는 편이 좋다. 항공사를 직접 찾기 보다는 말이다. 항공사에서 판매하는 항공권은 기본적으로 여행사에서 판매하는 것보다 가격이 높기 때문이다.
(이렇게 설명했으니 내게 싼 항공권 직접 부탁하는 사람들이 적어지려나? ㅋㅋ)
(2008/07/01)
궁금했는데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ㅎㅎ
으.. 오래 전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