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여행이라는 것이 참 따분하다.
배처럼 탁 트인 외부로 나다니며 시원한 바람 느낄 수도 없이 그저 좁디 좁은 항공기, 좁은 좌석에 앉아 있어야만 하니 말이다.
그나마 그런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이 있다면 단연코 기내 영화나 음악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영화는 일반 상영관보다 훨씬 먼저 접할 수도 있고, 심지어는 국내에 개봉하지 않는 영화들도 만나볼 수 있어 그 쏠쏠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사상 최초 기내 영화는 거의 90년 전
항공기 안에서 영화는 언제부터 상영되기 시작했을까?
사실 항공기 안 기내영화 상영은 꽤나 오래된 일이다. 무려 거의 90년 전 일이니 말이다.
사상 최초로 항공기 안에서 영화를 상영했던 항공사는 영국의 Imperial Airways 였다. 1925년 4월, Imperial Airways는 런던을 기점으로 유럽 지역으로 운항하는 항공편에서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다. (1921년 8월 Chicago Pageant of Progress exposition에서 수상 비행편에서 상영했다고 하나, 박람회에서 일종의 이벤트였으므로 최초의 기내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당시 상영했던 영화는 1912년 아서 코난도일(Arthur Conan Doyle)이 발표한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The Lost World" 이었다. 이 영화는 당시 기술로는 대단히 파격적인 시도를 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공룡들을 스톱모션이라는 방식을 최초로 도입해 촬영하기도 했다.
영화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고 오늘날 우리에게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 것으로 선사시대의 공룡 괴물이 현대 시대에 등장해 도시를 때려부순다는 설정과 함께 남녀간의 러브라인을 만들어가며 스토리를 끌어간다는 점에서 요즘 블록버스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분들은 짐작했겠지만 이 영화는 무성 영화다. 당시의 기술로는 음성을 입힐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영화를 만들고 나서 음악으로 배경을 입히고 대사는 자막으로 처리해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마치 찰리채플린의 무성 영화를 보는 듯 하다.
사실 이 영화의 또 하나 특징은 실사 영화로는 사상 처음으로 공룡을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물론 그 이전에 애니메이션으로 1914년 단편 '공룡 거티(Gertie the Dinosaur)'가 있었지만 실사 영화로는 이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가 처음이라 할 수 있다.
아래는 사상 최초로 항공기내에서 상영됐던 "잃어버린 세계(The Lost World)" 풀 버전이다.
정기 항공편에서 제공했던 기내 영화는 언제부터?
하지만 항공기 기내 영화는 그리 활발하게 확산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무려 40년 가까이 지나는 동안 별다른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 Imperial Airways도 정기편 항공 스케줄 모든 편에 영화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때에 따라 부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했던 것 뿐이었다.
이후 항공편에 기내 영화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항공사는 TWA였다. 1961년 7월 19일 시작된 이 서비스를 장식한 영화는 1961년 작 JohnSturges의 "By Love Possessed" 다. 기내 오락물(Entertainment)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현대 항공여행에 있어서 기내 오락물은 이제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항공 여행 경험이 제법 있는 여행객들은 항공편, 특히 장거리 항공편을 선택할 때 과연 그 항공기가 AVOD(Audio-Video On Demand), 즉 IFE(In-Flight Entertainment) 장비가 갖춰져 있는 지 미리 확인해 볼 정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항공기내 AVOD가 갖춰진 항공기가 많지 않았다. 즉 개인 비디오 장비가 없는 항공기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인데 당시 영화는 마치 영화관에서처럼 정해진 시간에 관람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잠을 청하거나 책을 읽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누구나 항공기내 개인 비디오 시스템을 통해 수십편의 영화나 드라마, 각종 쇼 등을 개인 취향에 따라 골라가며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저비용항공사 특징 중 하나로 기내 서비스 최소화를 들곤 하는데, 이런 흐름을 거스르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기내 오락물이다. 하지만 고가의 AVOD 장비를 갖출 수 없었던 저비용항공사들이 선택하는 것들이 아이패드(iPAD) 등 태블릿을 통한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 상품이다. 물론 유료이긴 하지만 말이다. ^^;;
여러분도 기내에서 영화를 즐기시는가? 아마도 CGV나 메가박스에 채 걸리지도 않은 미개봉 영화를 접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항공 기내영화 역사가 90년이 되어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