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국내 항공업계는 소란스런 소식으로 어수선했다.
필리핀 국적의 저비용항공사인 제스트항공이 갑자기 운항을 중단해, 이를 이용해 필리핀 등지로 출발했거나, 예정이었던 이용객들의 발이 묶여 버렸기 때문이다.
필리핀 현지에 무려 천 여명 이용객이 대체 항공편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후 다른 대체 항공편을 이용해 귀국하기도 했고, 제스트항공의 운항이 재개되어 최악의 사태는 면했지만, 그 파장은 적지 않았다.
제스트항공이 필리핀 당국으로부터 운항 정지를 당한 것은 안전규정 위반 때문이었다. 항공기 안전수칙 준수는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데, 이를 어기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운항을 정지시킨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조치다.
그런데 자세히 내용을 들여다 보니, 어겼다는 안전규정 언급 중에 '승객을 항공기에 태우고 연료를 주입했다'는 내용이 관심을 끈다.
항공기가 운항하기 위해서는 연료 주입이 당연한데, 왜 이게 문제가 된다는 것일까?
항공기에 연료 주입하는 장면
위 그림과 관련해 퀴즈 하나..
항공기에는 승객이 탑승해 있을까? 아닐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항공기 안에 승객은 없다' 가 정답이다.
기본적으로 항공기는 거대한 연료통이라고 볼 수 있다. 제트 여객기 날개 대부분에는 이 연료로 채워져 있다. 이중 삼중의 안전 조치를 하고 있지만, 연료와 관련하여 가장 안전에 취약한 시점은 바로 연료 뚜껑을 열고 연료를 주입하고 있을 때다.
연료를 주입하고 있는 도중에 외부로 부터 어떤 물질이 날아올 지도 알 수 없으며, 만의 하나 발화 물질이라도 연료 주입구에 투입되는 상황이라면 안전에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화재 등의 가능성을 100%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항공 안전규정 상 연료 주입은 승객 탑승 전에 하도록 되어 있다. 만일의 사태가 발생해도 승객의 인명 피해는 예방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제스트항공은 승객을 태우고 연료를 주입해 안전 규정을 위반했을까?
저비용항공의 특징 중 하나는 항공기 순환 효율성이다. 흔히들 말하는 식당에서의 '테이블 회전율'과 비슷하다고 할까? 항공기가 공항에 도착해 다음 공항으로 이륙하기 전까지 지상에 있는 시간을 Ground Time(Turnover time) 이라고 하는데, 이 시간을 최대한 줄이면 줄일 수록 항공기 운용 효율성은 높아진다. 장거리, 대형 항공기의 경우에는 이 Ground Time이 2시간 내외지만 단거리, 소형 항공기의 경우에는 1시간이 채 안되는 경우도 있다.
저비용항공일 수록 이 Ground Time이 더욱 짧게 한다. 항공기 운용 효율성을 높혀야 하기 때문이다. 승객의 탑승하는데 필요한 시간 등을 제외하고 그 이전에 연료 주입을 끝내기 위해서는 매우 바쁘고, 빠르게 작업해야 하나 그러지 못하면 승객 탑승시각까지도 연료 주입을 끝내지 못하는 상황을 맞는다.
제스트 항공의 경우, 당연히 항공기가 지연되는 한이 있어도 연료 주입을 끝내고 승객을 탑승시켜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연료가 주입되는 동안 승객이 탑승했거나, 이미 탑승시켜 놓고 연료를 주입했거나 했다는 얘기다.
항공기 안전 규정은 다른 어떤 안전 규정보다 까다롭고, 예민하다. 조그만 실수, 태만 하나로 상상하기도 힘든 최악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것 아닌 것 같은 규정임에도 항공기 정비를 위해 장시간 소요되기도 하고, 항공기 운항이 취소되기도 한다.
항공기는 이중 삼중의 안전 조치가 확신되지 않는 한 비행에 투입되지 않는다. 아니 안전규정 때문에라도 비행할 수 없다. 하지만 제스트 항공은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참고로, 항공기 연료 보급은 승객 탑승 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공항 소방 시설 등을 고려한 안전 규정이 승객이 탑승 중이거나 탑승한 상태에서도 소방 시설만 인근에 준배해 놓으면 연료를 보급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공항이 같은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며, 각 나라/공항 고유 규정에 따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