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리 포스트 | |
---|---|
비행사 | |
출생 | 1898년 11월 22일 |
사망 | 1935년 8월 15일 ( 37세 )
|
와일리 포스트(Wiley Post)
단독 비행으로 세계를 일주한 최초의 비행사다.
개요[편집 | 원본 편집]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고 교도소 생활을 한 전과자였으며 왼쪽 눈을 다쳐 실명한 장애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미국의 영웅이 됐다.
낙하산 쇼를 직업으로 삼아 생활하며 비행기술을 배웠던 그는 텍사스 석유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사고로 왼쪽 눈을 다쳐 실명했다. 하지만 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훈련을 통해 정식 비행사가 됐고 F.C. 홀의 자가용 비행기를 조종하며 정식 비행사로 삶을 시작했고 1933년 단독 세계일주비행에 도전해 성공했다.
생애[편집 | 원본 편집]
사상 최초의 단독 세계일주비행[편집 | 원본 편집]
1931년 해럴드 개티와 세계일주비행에 성공했지만 배움이 짧았고 한 쪽 눈마저 실명한 그에 대한 평가는 '단순히 비행기를 조종한 것 외에 한 일이 없다'는 식으로 그다지 호의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단독 세계일주비행을 계획하게 된다. 자동조종장치와 무선방향탐지기 등을 이용해 항법사(네비게이터) 없이 단독으로 세계일주비행에 나섰다. 1933년 7월 15일, 포스트는 뉴욕주 플로이드 베넷 비행장에서 대장정에 올랐다. 베를린, 모스크바, 시베리아, 알래스카(페어뱅크), 캐나다(애드먼튼)를 거쳐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7월 22일 어둠이 깔린 지 한참 뒤 그의 '위니메이(Winnie Mae)' 비행기가 베넷 비행장 활주로에 착륙했다. 비행장에는 5만 명이 넘는 군중이 기다리고 있었으며 그들은 7일 18시간 49분의 단독 세계일주비행에 성공한 포스트를 열렬히 환영했다.
기타[편집 | 원본 편집]
여압수트 개발[편집 | 원본 편집]
장거리 비행을 위해서는 비행고도를 높여야 했지만 당시에는 조종실 여압조절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1934년 포스트는 여압수트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마치 잠수부가 입을 법한 모습을 띈 이 여압수트는 고고도에서도 지상에서의 기압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세 번째 개발한 여압수트를 착용하고 1934년 9월 5일 4만 피트 고도 비행에 나섰고 결국 5만 피트(1만 5천 킬로미터) 고도에서의 비행에 성공했다.
항공기 기증[편집 | 원본 편집]
단독 세계일주비행의 주역 중 하나인 '위니메이(Winnie Mae)' 비행기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시되었다가 2013년부터는 미국 국립항공우주박물관(National Air and Space Museum)에 전시되어 있다.
공항 이름[편집 | 원본 편집]
사후 그의 공로를 기념해 오클라호마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1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공항(와일리 포스트 공항, PWA)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이 공항은 주로 General Aviation 비행기들이 운항하고 있다. 참고로 오클라호마 메인 공항 이름은 그와 함께 비행하다가 사망했던 배우 이름을 붙인 윌 로저스 공항(Will Rogers World Airport, OKC)이다.
참고[편집 | 원본 편집]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