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으로 건너가 공항 근무를 시작했을 때다.
아무래도 공항 근무라는 것이 비행기의 운항 시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어서 아침 일찍 혹은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게다가 다른 나라에 왔으니 그나라 이곳 저곳을 좀 보고 익히려면 자동차가 필요할 것 같아 차를 하나 구입하기로 했는데..
일본에서 오래 두고 사용할 것도 아니고 해서 적당한 가격의 중고차를 하나 알아 보기로 했다. 일본에 와본 분은 알겠지만 일본 어디에 가나 중고차량 중개시장(매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과정에 알게 된 것은 일본이 의외로 중고차량 거래가 많다는 것이다. 일본 자체가 세계적인 자동차 생산 강국인데다가 절약하기로 소문난 민족성이라고 알고 있던 터라, 한번 구입한 차량을 오랫동안 이용하지 않고 일정 년수가 되면 중고 시장으로 밀려나는 모습을 본 것은 조금 의외였던 것이다.
일본인에게 직접 들은 바로는 일본에서도 자동차의 운행거리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중고차량으로 내 놓아도 형편없는 가격으로 밖에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정 거리를 운행하지 않는 범위일 때 미리 중고차 시장에 내 놓는다고 하는데.. 글쎄.. 일부 의견인지 아니면 전반적으로 그런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여러 경로를 거쳐 고민 끝에 아주 적당한(?) 가격으로 중고차를 장만했는데, 정작 한국에서 차를 구입했을 때보다 오히려 더 긴장되었다.
그 이유는 단 한가지, 한국과 사뭇 다른 교통체계 때문이었다.
한국과 다른 교통체계 중 가장 크게 다른 것이 운전자의 좌석 위치가 한국과 반대(오른쪽)인 것과 그에 따른 자동차 운행방향이 반대였던 것이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버릇과 습관을 단시간 내에 바꾸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일본에서 운전하면서 아주 큰 일을 당할 뻔한 경험이 있었다.
그건 다름아닌 네거리에서 내가 맨 앞에서 우회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내 앞에 다른 차량이라도 있으면 조심조심 앞차만 따라가면 되는데, 내가 맨 앞이다보니 아무 생각없이 우회전을 하고 나서 반대방향 (역방향) 차선으로 넘어가 버린 것이다.
우회전 하자 마자 내 눈 앞에 나타난 것은 나를 향해 달려드는 차량들...
어휴~~ %$%^$^%$***&(*>*& 그 때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 땀이 날 정도다. 얼마나 놀랐는 지 말이다.
"기장님! 오늘 비행은 제가 기장님 좌석에서 해도 되겠습니까?"
"그러지 뭐.. 자네도 비행(조종) 경험을 더 쌓아야 하니까 말야 !!"
이런 내용의 대화가 민간 항공기 조종실에서 가능할까?
답은 "노(No)" 다.
자동차와는 달리 항공기에는 운전석?, 조종석이 2개 있다.
최근 대부분의 민간 항공기 조종실에는 조종 장치가 기장, 부기장 용으로 각각 두벌이 있는데, 모든 조종 장치와 기기들이 대칭을 이루도록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기장석의 기기와 장비가 A -> B -> C 순으로 되어 있다면 부기장 자리의 기기는 C -> B -> A 순으로 되어 있다는 뜻이다.
기장은 왼쪽 좌석에 앉아서 기장용으로만, 부기장은 오른쪽 좌석에서 부기장용 조종 장치로만 조종을 해야 하도록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기장이나 부기장이 임의로 상대방 좌석에 앉아서 조종하는 것은 명백한 규정위반이기 때문에 문책의 대상이 된다.
기장과 부기장은 좌석이 정해져 있다.
이 룰(Rule)은 전 세계 모든 항공사가 공통적으로 적용하는 Rule이며,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비행 안전상의 이유 때문이다.
위에서도 일본에서의 운전석이 뒤바뀐 자동차 운전 경험을 이야기 했지만, 그 동안 익숙해져있는 습관을 한 순간에 바꾸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왼쪽 핸들에 익숙해져있는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오른쪽 핸들의 일본 차량을 운전하는 경우, 어색하고 처음에는 불안하기 이를데 없다. 그런데 하물며 복잡하고 민감한 수십가지 장비를 순간적으로 다뤄야 하는 항공기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또 한가지 우측 핸들 차량 운전 경험을 이야기 하면, 자동차 핸들(휠) 좌, 우측에는 방향등 작동 장치와 와이퍼 작동 장치가 각각 좌우측에 위치해 있다. 오른쪽 핸들 차량 (일본) 은 이 장치 또한 반대로 되어 있어, 방향을 바꾼다고 좌측 스틱(좌우측 방향등 작동 장치)을 조정하게 되면 예상치 못하게 전면 창문 와이퍼가 움직이게 되고, 이에 깜짝 놀라 브레이크를 밟거나 다른 오 동작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순간적인 신체 동작은 머리로 생각한다기 보다는 몸에 익혀진 습관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십가지 비행장비, 조종장비를 민첩하게 다루어 안전하게 비행해야 하는 항공기의 경우에는 몸에 익힌 무의식적인 습관이 더욱 중요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위의 대화에서와 같이 조종사가 다른 목적으로 좌석을 서로 바꾸려고 해도 그들 마음대로 기장, 부기장의 좌석을 바꿔 앉을 수 없게 규정화 되어 있다.
그럼 기장이 부기장 좌석에 앉는 예외는 없을까?
세상에 예외 없는 경우는 없다. ^^ (예전에 영어 문법을 배울 때는 오히려 예외가 더 많았던 기억이 있지만..)
첫째, 승무원을 짝을 지워 스케줄을 편성할 때 부기장이 부족해서 기장만 두 사람 한 팀으로 만들어 비행하는 경우에는 부기장 역할을 수행하는 기장이 부기장 좌석에 앉아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부기장 좌석에 앉아 임무를 수행하는 기장은 일반적으로 비행 중 가장 민감한 단계인 이/착륙 업무는 수행하지 않고 기장 좌석에 앉은 기장이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무래도 만약의 경우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동 착륙을 하는 경우는 예외 사항이지만..)
둘째, 교관 기장이 부기장 좌석에 앉는 경우도 있다.
기장으로 승격하기 위한 훈련을 받는 부기장 학생이나, 다른 기종의 기장으로 전환 교육을 받는 피 교육 기장은 왼쪽 좌석에 앉아서 훈련 비행을 수행해야 하는 데, 이 경우 훈련 교관 조종사(기장)은 당연히 부기장 좌석에 앉아서 조종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이 기장만 두명인 비행, 혹은 기장 훈련을 위해 교과 기장이 부기장 좌석에 앉는 경우라고 해도, 기장이 부기장 좌석에 앉아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부기장 좌석에서 Pilot Flying(PF), Pilot non Flying(PNF), 교관(Instructor)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사전 교육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교관 기장은 자신의 기종에 대해 교관자격면허를 다시 취득해야 하는데, 이 때 주된 훈련 및 평가항목 중에 하나가 오른쪽 좌석에서의 임무 수행인 것이다.
오른쪽 부기장 좌석에서의 비행은 별도의 허가가 필요하며, 경험 많은 기장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오른쪽 좌석에 앉아서 비행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항공법을 위반하는 위법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간혹 우리나라에서도 오른쪽 핸들로 운전하는 외국 차량을 보게 된다. 아마도 대부분 외국에서 가지고 운행하다가 국내로 그대로 들여온 것으로 짐작되는데, 왼쪽 핸들 운전을 기준으로 된 우리나라 교통체계에서 운전하기 쉽지 않을텐데, 운전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
2007/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