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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해호

SX-3 제해호, 조경연 당시 소령이 개발해 1957년 3월 시험 비행에 성공한 비행기

개요[편집 | 원본 편집]

대한민국 최초의 비행정이자 최초의 국산 쌍발 항공기, 대한민국 제작 항공기중 최초로 엔진 2기를 주익에 장착한 항공기로 조경연 당시 소령이 개발을 진두지휘하며 부품도 직접 구했다.

제해호는 당시까지 만든 비행기 가운데 가장 큰 기체로 최대 6명까지 탑승 가능한 중형급이었다. 무기도 탑재해 공격할 수 있었던 제해호는 엔진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품, 기체를 해군이 직접 만들어냈다.


제해호 명칭은 이승만 대통령이 부여했으며, 조경연 예비역 중령이 개발한 항공기 가운데 유일하게 도면이 확인되는 항공기다.

개발[편집 | 원본 편집]

해군은 비공식적이던 해군의 항공기 제작, 보유를 공식화하기 위해 1956년 1월 해군공창 항공반을 해군과학연구소 제1연구부 항공과로 격상시키고 조경연 대위를 소령으로 진급, 항공과장에 임명했다.

춘천 육군항공대에서 발견한 L-19 엔진 4개를 획득한 그는 이 엔진으로 제해호(SX-3), 통해호(SX-5)를 제작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57년 3월 30일, 제해호가 완성됐다. 시험비행도 무사히 마쳤다. SX-5[1] 통해호를 개발해내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본 기체는 해경으로 이관된 이후인 64년도 2월 27일에 발생한 사고로 인해 기체가 파손, 해당부위가 천천히 침수되다 피해복구가 불가해져 3월로 넘어오자마자 침몰하여 소실. 또한 본 기체로 중령 진급한 조경연 중령도 이 기체가 해경으로 이관되던 즈음 군을 떠났다.

운용[편집 | 원본 편집]

시험비행에 성공한 후 1957년 7월 15일, 첫 항공부대인 함대항공대가 창설됐다. 이 해군함대항공대에 소속된 제해호는 남해안 일대 해상 감시, 함정 엄호, 대공 훈련 지원, 함포 탄착 수정, 긴급 수송 등 본격적인 함대 작전에 참여했다. 함대항공대는 57년 말까지 10명의 조종사와 22명 정비사를 확보하고 1958년 해군과학연구소가 제작한 통해호(SX-5), 육상 비행기 등 4대의 항공기를 추가로 배치 운용하게 됐다.

제해호 기체를 추가 제작하려 했지만 미군의 입장 때문에 무위로 돌아갔다. 한국전쟁 후 미국의 지원으로 연명하다시피 했던 한국이 자체 제작한 항공기 체계에 대해서는 병참 지원이 어렵다는 미군의 입장으로 인해 항공기 추가 제작을 포기했고 제해호 역시 해경으로 이관되면서 해군함대항공대도 1963년 3월 1일 해체됐다.

해경으로 이관된 제해호는 1964년 2월 27일, 임무 중 실종되었다. 해무 때문에 방향을 잃고 연료가 고갈돼 조난을 당했다. 72시간 동안 표류했다가 일본 어선에 의해 발견됐다. 승무원은 모두 무사했지만 이 비행기는 장시간 표류로 부식되면서 파손돼 버렸다.

제원[편집 | 원본 편집]

  • 길이 : 11.6미터
  • 윙스팬 : 13.8미터
  • 무게 : 1300킬로그램
  • 순항속도 : 시속 115마일
  • 최고속도 : 시속 135마일
  • 범위 : 600노티컬마일(nm)

대한민국 비행기 개발 역사[편집 | 원본 편집]

각주


  1. 4는 죽을 사라는 이유로 해군에서는 예전부터 기피되고 있다. 그래서 4를 건너 뛴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