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 항공사의 출현이 눈부시다. 우리나라만 해도 한성항공을 시작으로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에어부산, 진에어 등 줄을 잇고 있다.
하지만 애경 그룹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가진 제주항공,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 격인 에어부산, 대한항공 자회사인 진에어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자리잡은 저가항공사가 없다. 한국이라는 지리적 환경과 시장 수요가 그만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초기 투자에서 이익이 발생할 때까지 장시간 소요되는 항공산업의 특성상 든든한 물주없이 뛰어든 저가 항공사들은 힘든 생존 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다.
항공칼럼 저가 항공사, 이대로는 생존 힘들다(2008/10/27)
대표적인 예가 한성항공이다. 자금력 부족으로 인해 작년 10월 이래 지금까지 운항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조만간 적당한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파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나라 저가 항공사들이 이렇게 고전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저가 항공시장이라는 것이 성공하기 힘든 매우 작은 시장일까? 아니면 전세계에 붐처럼 번지는 저가항공에 어떤 매력과 가능성이 있기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것일까?
제 블로그를 구독해 주시는 젤가디스 님께서 제보해주신 자료를 보니, 저가 항공사의 특징은 물론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지 그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 같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이 글을 빌어 젤가디스님께 감사를.. ^^)
저비용항공사로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사우스웨스트항공, 유럽의 라이언에어와 이지제트를 중심으로 비교한 자료다. 일반 메이저 항공사로는 루프트한자, 에어프랑스, 영국항공을 예를 들었다.
우선 항공권 가격이다. 물론 노선 구조가 일반 항공사와 저가 항공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절대적 가격 비교는 큰 의미는 없을지 모르나 대략적인 비교는 가능하다. 라이언에어의 평균 항공요금이 약 44유로이며 사우스웨스트항공은 107유로 정도로 저가 항공사로 분류되는 항공사들 가운데에서도 실용적 저가항공사와 가격 파괴 저가항공사로 나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일반 항공사에 비해서는 훨씬 저렴하며 이것이 저가 항공의 가장 큰 무기이자 매력이다.
다음은 항공기에 설치된 좌석 수다.
B737-300 기종을 놓고 비교했을 때 에어프랑스 등 일반 항공사들은 128석을 설치해 운용하는 반면 저가 항공사들은 모노 클래스 (퍼스트, 비즈니스 클래스 없이 이코노미만 운영하는 형태) 148석이다.
항공상식 무릎조차 펴기 힘든 좌석은 괴로워 (항공사별 피치 현황, 2007년 12월)
그만큼 저가 항공사 항공기는 좌석간 간격 (피치, Pitch) 이 좁아 장거리 비행 시에는 불편할 수 밖에 없다. 저가 항공의 경우는 어떻게 하든 많은 좌석을 설치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이 또한 저렴한 항공 요금이라는 무기가 있기에 고객으로 하여금 불편함을 감수하도록 만들고 있다.
항공기 순환 시간 (Turnaround)은 지상에서 체류시간을 줄여 다음 항공편으로 얼마나 빨리 연결시키는 지 항공기 운용 효율성을 보여주는 지표다.(항공위키 항공기 가동률)
저가 항공사들이 대개 25분 정도인 반면 일반 항공사들은 45분 정도 수치를 보여준다. 저가 항공사가 그만큼 빨리 지상에서 작업을 끝내고 다음 항공편으로 빨리 투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항공기가 도착해 25분만에 승객 내리고, 청소, 다음 항공편 승객 탑승, 출발까지 이루어낸다는 뜻이다.
이는 일반 항공사들이 기내식 등 기내 서비스 용품을 탑재하고 운용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저가 항공사는 생략하고 운용할 수 있기 때문에 25분 만에도 가능하다 하겠다. 이렇게 함으로써 항공기를 조금이라도 더 운항시킬 수 있게 되므로 스케줄 (노선 경쟁력) 측면에서 상당한 경쟁력을 가지게 된다.
항공 노선구조는 저가 항공을 구분하는 주요 특징 중 하나다. 일반 항공사들이 장거리 운항과 수송한 승객들을 다음 항공편으로 연결시키는 허브 앤 스포크 방식을 따르는 반면, 저가 항공사들은 소위 똑딱(Point-to-point) 노선을 주로 운항한다. 서울-부산 노선만 반복해서 계속 운항하는 방식이다. 거의 셔틀 버스처럼 말이다.
저가 항공사는 승객을 실어와 다른 곳으로 연결하는 등의 노력은 하지 않는다. 장거리 노선이 없는 저가 항공사 입장에서 허브앤스포크 방식은 투자 대비 성과가 그리 좋지 않기 때문이다.
저가 항공사는 주로 작은 공항을 이용한다. 가장 큰 이유는 큰 공항에 비해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런던 외곽에 있는 런던 시티 공항(LCY) 같은 경우엔 착륙료(Landing Fee)가 약 160만원 정도로 런던 히드로 공항(LHR)의 3분 1 수준이다. 게다가 혼잡하지 않은 시간대에 이착륙 하는 경우 아예 착륙료를 받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도심 외곽의 작은 공항을 이용하게 되면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결국 항공요금 인하로 연결된다.
또한 공항 시설을 이용할 때도 최대한 단순하게 필요한 것만 이용해 비용을 최소화하는 특징을 잘 보여준다. 다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지상 교통편 등 접근성의 불편함은 감내해야 할 저가 항공의 숙명이다.
항공권 판매는 직접 온라인 판매 방식이다.
전통적으로 항공권은 여행사를 통해 구입한다. 항공사가 직접 판매하는 분량은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은 여행사를 통해 판매하는 간접 판매 방식이다. 하지만 이런 판매 방식은 중간 수수료 등을 발생시켜 항공요금이 비싸질 수 밖에 없다.
저가 항공사들은 이런 판매방식을 IT 기술 발달을 힘입어 직접판매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항공권을 대부분 인터넷 온라인을 통해 항공사가 직접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중간 수수료는 물론 인적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어 항공 요금을 대폭 낮출 수 있게 된다.
저가 항공사는 기내식을 제공하지 않으며 (No Frill), 기내 서비스도 최소화해 비용을 절감한다. 일반 항공사들이 기내 엔터테인먼트 장비, 시설 확충으로 추가 비용이 들어가는 것과는 다르다.
또한 저가 항공사들은 기종을 최대한 단순화한다.
굳이 장거리 운항 필요성이 없으므로 기종은 주로 중단거리용으로 통일 시킨다. B737 이나 A321 등이 좋은 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기종 단일화라는 걸림돌 때문에 장거리 운항을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의 경우는 가장 작은 소형 항공기부터 머지않은 장래에 들여 올 A380 초대형 항공기까지 고루 갖추고 있다. 기종이 다양해지면 조종사도 그만큼 기종별로 많이 필요하고, 정비사도 기종 수만큼 더 필요하게 되므로 인적 효율성에 있어서는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기 기종 조종사는 한달에 300-400시간을 비행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기종을 모는 조종사는 불과 200시간도 못채우기도 한다. 이는 상당한 비효율성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일반 항공사는 장거리 노선을 필수적으로 운영함으로 기종이 다양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지만, 저가 항공은 단거리 위주로 운항함으로 기종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저가 항공사 직원 인적 비용은 고정급 보다는 성과급(내지는 변동 급여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훨씬 효율적인 인적 활용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비용을 줄이고, 프로세스를 단축함으로써 직원 한 사람당 승객 수송 수는 일반 항공사와 비교할 바가 아니다.
영국 항공은 직원 한명이 승객 735명을 수송, 에어프랑스는 715명을 수송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아, 직원 1명 당 연간 약 1,200 명 승객을 수송하는 수준을 보여준다.
하지만 저가 항공을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지제트는 직원 한명이 약 6,700명을, 라이언에어는 거의 만 명을 수송하고 있어 능률 측면으로만 보자면 일반 항공사는 저가 항공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저가 항공사 직원이 일반 항공사 직원에 비해 10배 내외의 능률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공항에 카운터를 최소화하거나 없앴으며, 전화 예약도 거의 받지 않으므로 콜센터도 필요없다. 게다가 그나마 지상에서 필요한 일도 승무원이 나누어서 하는 경우도 있고, 기내 서비스가 거의 없으므로 승무원 수도 법정 규정 수 만큼만 탑승시키면 되므로 인력을 최소한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항공사에 비해 엄청난 저비용 구조를 자랑하는 저가 항공사 비용 절감 현황
저가 항공사는 위와 같은 다양한 방식과 노력을 통해 일반 항공사에 비해 약 절반 정보 밖에 안되는 저비용 구조를 가지고 있어,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므로, 비록 항공권은 저렴하지만 이익을 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저가 항공이 이렇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박리다매가 기본 바탕이 되어야 한다. 파리 - 런던 구간 요금이 불과 5-6유로 정도로 판매되기도 하는데, 이런 요금으로 이익을 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예약 시기에 따라 요금을 차별화하고, 비록 껌값 같은 요금이라도 좌석을 비우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박리다매를 통해 좌석을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출처: 5wgraphics.com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회의적인 것 중의 하나가 한국이라는 좁은 항공시장 여건에서 저가 항공사가 성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불과 5천만명 인구가 기반인 한국 시장에 거대 항공사 두개가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나 이익을 내며 저가항공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지... 의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저가 항공사들의 가장 취약한 점 중 하나는 저가 항공사의 가장 큰 특징인 저비용 구조를 확실하게 다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비용 구조를 가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항공요금을 파격적으로 싸게 판매한다는 느낌도 주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는 당장 하루라도 빨리 흑자로 전환해야 한다는 조급증에 원인이 있다.
저비용 구조를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항공권을 싸게만 판매하자니 적자 폭은 늘어날 수 밖에 없어 항공요금도 어정쩡한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모양새다.
그리고 우선은 시장을 키워야 한다. 특히 저가 항공시장을 확실하게 키워야 한다. 그저 일반 항공사보다 조금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하려다가는 자칫 '별로 싸지도 않은 게 서비스만 형편없다'는 인식을 주기 십상이다. 고객으로 하여금 서비스라는 기대치를 아예 버릴 수 있도록, 대신에 저렴한 항공 요금으로 그 기대치를 채워 주어야 저가 항공시장으로 보다 많은 고객을 끌어 들일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유럽이나 미국 저가 항공의 사례가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현재 승승장구 하고 있는 저가 항공의 근본적 특징을 보면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를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하고 고민한다면 현재의 항공수요를 보다 더 확대해 진정한 저가 항공시장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저가 항공의 가장 큰 무기는 박리다매다. 어설프게 일반 항공사 따라가면 안된다. 가랑이 찢어진다. 대신 군살(서비스 욕심)을 좌악 빼 버리고, 종종 걸음으로 빨리 그리고 많이 뛰는 방법이야말로 저가 항공만의 경쟁력을 키우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