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기업결합 승인 유예 결정, 독과점 해소 방안 요구해
- 제시한 대안 불충분 판단 경우 2차 심사
- 영국의 불허 결정은 유럽연합(EU), 미국, 일본, 중국 등의 심사에도 영향
- 대한항공은 진정 합병 원할까? 속내는?
14일, 영국 경쟁 당국(CMA, 시장경쟁청)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승인을 유예했다.
영국, 경쟁제한성 판단 해소 대책 요구
두 항공사가 합병할 경우 영국-한국 노선이 독과점 상황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주된 이유는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영국-런던 노선의 유일한 항공사로서 이 둘이 하나가 될 경우 해당 노선은 통합 대한항공의 독과점 영향력으로 인해 소비자들의 선택이 제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화물 수송에 있어서도 경쟁제한성이 우려되기 때문에 1차 심사에서 유예결정을 내렸다. 대한항공이 제출할 시정 방안에 납득하지 못할경우 CMA는 2차 심사에 들어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 진행에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 됐다.
영국은 임의신고국가이기 때문에 설사 영국 당국이 기업결합을 불허한다 해도 법적으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은 통합에 이를 수는 있다. 다만 영국은 기업결합을 반대한 입장이기 때문에 영국 노선이 중단될 수도 있는 위험성을 감내해야 한다.
또한 영국의 심사 결과는 앞으로 남아 있는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의 기업결합 심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영국의 1차 심사 결과에 대한 시정 대책은 결국 대안 항공사가 등장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 밖에 없다. 영국항공 혹은 버진애틀랜틱이 한-영 노선에 취항한다면 경쟁제한성은 해제될 수 있다. 또한 그렇다 하더라도 과점 해소를 위해 운항 횟수를 줄여야 할 수도 있다.
미국의 기업결합 심사 결과가 이달 중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영국의 유예 결정은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됐다. 시장에서는 나머지 국가들 대부분 조건부 합병 승인 결정을 내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미국·유럽·호주 등 노선에서 주 69회 줄여야
지난달 국회에서는 양사 합병할 경우 미국·유럽·호주 등 3개 지역 노선에서만 주 69회를 줄이거나 다른 항공사에 내줘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합병시 독과점 기준인 50% 이하로 낮춰야 하기 때문이다.
노선별로 보면 미주노선은 주 44회를 타 항공사에 넘겨야 한다. 로스앤젤레스·뉴욕은 각각 주 14회·11회를 감축해야 하고 호놀룰루는 주 1회, 샌프란시크는 주 7회, 시애틀도 주 2회 포기해야 한다.
유럽노선의 경우 바르셀로나·프랑크푸르트·런던 등은 주 4회씩, 파리와 로마는 주 3회씩 타 항공사에 내줘야 한다.
호주는 조건 없는 기업결합 승인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독과점 해소를 위한 주 7회 운항 포기라는 선택을 강요받지 않게 됐다.
업계에서는 독과점 해소, 시장 경쟁제한성 방지, 소비자의 선택권 등이 매우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이를 거스르며 통합에 이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독과점 해소를 위해 모든 조건을 충족시킬 경우 양사의 통합이 가지는 애초의 의미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는 점이다.
아시아나항공의 파산을 막기 위해 백기사로 등장한 대한항공의 선택에는 고용유지라는 의무사항이 부여되어 있다. 네트워크가 축소되고 운항 노선 횟수가 줄어드는 등 사업규모 위축되는 경우 고용유지는 사실상 어렵게 된다. 강제적인 구조조정은 면한다 해도 신규 채용 축소 등 고용시장에 끼치는 악영향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 된다. 아시아나항공 내부(노조)는 물론 대한항공 내부에서도 합병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이유다.
아시아나항공은 고용 불안을 우려하고 대한항공에서는 죽을 것 같았던 코로나19 팬데믹을 버텨내고 상승할 일만 남았는데, 합병이 오히려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대한항공에게 합병이 득? 독?
실제 대한항공 입장에서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은 득이 될까?
2020년 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했을 때는 한진칼 지분 분쟁 등으로 인해 대한항공 경영권이 사모펀드(KCGI)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어쩔 수 없이 산업은행과 손을 잡고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즉 경영권 분쟁이 아니었다면 결정하기 않았을 선택이었다라는 것이다.
어찌됐건 코로나19 사태를 겪는 과정에서 한진칼 경영권 분쟁은 사실상 종결됐다. 재무적 어려움을 겪을 것 같던 대한항공이 자산 매각과 화물 시장 호황으로 오히려 재무구조가 개선되었고 델타항공 등 우호 세력이 가세하면서 사모펀드의 명분과 입지가 약화됐기 때문이다. 한진칼 지분 확보 경쟁은 무위로 돌아갔고 대한항공 경영권은 조원태 회장 등 현 경영진이 그대로 유지하게 됐다.
뒤집어 생각하면 대한항공은 아쉬울 것이 없는 상황이 됐다. 애당초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결정은 눈물 머금은 결정이었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주요 국가의 조건부 인수 또는 불허 결정이 대한항공에게는 합병 포기를 선택해도 좋을 명분이 될 수 있다.
백번 양보해 주요 국가의 독과점 해소 요구를 받아들여 조건부 합병에 이른다면 대한항공에 돌아오는 잇점은 무엇일까? '1+1'이 '2'가 되어 규모의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1.5' 등에 머물러도 괜찮은걸까? 슬롯을 외항사에 넘기는 등 국가적 항공 경쟁력이 약화되는 것이 누구에게 이득이 될 것인가?
여기에 코로나19 기간 중 악화될대로 악화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상태가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2018년 814%였던 부채비율은 지난 3분기 말 기준으로 3781%까지 급격히 높아졌으며 급기야 부분자본잠식 상태에 빠져버려 합병에 성공한다 해도 대한항공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합병이 불발되면 아시아나항공은 독자 생존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산업은행이 이를 받아들일 지는 예단하기 어려우나 국가의 항공 경쟁력 상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서라도 살려놓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아시아나항공이 파산에 이른다면 국가적인 항공 경쟁력 상실은 물론 대규모 고용불안 상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은 오히려 내심 합병 불발을 원하는 것은 아닐까? 경영권 분쟁이 끝나고 재무구조마저 대폭 개선된 마당에 명목(?)상 살아남은 아시아나항공이 경쟁사로 살아남는다 해도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업데이트 >
11월 15일 미국도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에 대해 승인을 유예했다. 3월 심사 단계를 '간편'에서 '심화'로 전환한 뒤 제공받은 대한항공 자료를 바탕으로 심사했지만 독과점 우려, 경쟁제한성 발생으로 시장에 명확하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