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절차 마무리
- 글로벌 메가 캐리어로서 경쟁력은 물론 소비자 지향 노력 필요
- 기업결합까지의 4년보다 양사의 화학적 통합 2년이 더 중요
기어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경영난에 매물로 나온 아시아나항공을 HDC현대산업개발이 인수를 시도했다가 코로나19 시국이 겹치면서 포기해 자력 생존이 불가능해지자 구원투수로 나선지 무려 4년 만이다.
대한항공은 11일 8천억 원을 추가로 납입해 총 1조5천억 원으로 아시아나항공이 발생한 신주를 인수하면서 63.88% 지분을 확보한 최대주주로서 아시아나항공을 자회사로 편입했다.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된 시기는 코로나19 팬데믹 위기감과 파장이 최고조로 이르렀던 2020년 9월이었다. 항공편 운항은 속속 중단되고 아시아나항공뿐만 아니라 전세계 항공시장이 붕괴할 지경에 이르자 기업가치가 하락했다는 이유로 재실사를 요구하며 HDC 측이 인수 속도를 늦추었다.
결국 매각 주체였던 산업은행은 매각 무산을 선언했고 그 책임은 온전히 HDC현대산업개발 측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이를 반증하듯 이후 HDC 측이 제기한 계약금 몰취 소송에서 재판부는 (1,2심 모두) 2500억 원 계약금 소유권은 아시아나항공에 있다고 판결했다.(아시아나항공 매각 무산에 따른 계약금 몰취 소송 참고)
이 즈음 대한항공은 경영권 분쟁으로 KCGI 등과 갈등을 벌였고 아시아나항공 차기 인수자를 물색하던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는 대신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달라고 제안했다.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 지분을 산업은행이 매수해 대주주로 나서면서 대한항공의 우호세력을 자처한 것이다.(한진칼 경영권 분쟁 참고)
다소 어려움은 있었지만 산업은행이 든든한 아군으로 나서면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급물쌀을 탔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와 외국의 주요 경쟁당국 승인을 획득하는 과제는 좀처럼 넘기 힘들었다. 우선 우리나라 공정거래위원회는 1년 넘는 검토를 거쳐 조건부 승인을 냈고 주요 14개 나라의 승인은 더디게 진행됐다.
가장 큰 고비였던 유럽연합의 기업결합 승인 심사는 경쟁 제한성이 우려되는 주요 노선을 이관하고 화물사업을 매각하라는 조건을 달며 무려 3년 11개월이나 걸렸다. 대한항공은 티웨이항공에 파리, 프랑크푸르트, 로마, 바르셀로나 노선을 이관하고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은 에어인천으로 매각하기로 했다. (티웨이항공 유럽 취항,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매각 참고)
이 기간 항공업계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항공편 운항 횟수는 폭락했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정도였고 항공 여행객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항공기를 이용해야 하는 상용 비즈니스 수요만 가뭄에 콩나듯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대한항공의 저력은 빛이 났다. 한 때 세계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글로벌한 네트워크와 경쟁력을 가졌던 화물사업이 구명줄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업계에서는 최초로 여객기를 개조해 화물기로 띄우는 과감한 결정 등으로 글로벌 항공사들이 파산 위기를 겪는 중에도 대한항공만이 홀로 흑자를 기록할 정도였다.(코로나19 사태와 항공기 개조, 화물 전용 여객기 참고)
이때 다져졌던 화물 경쟁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했다. 여기에 폭락했던 여객 수요도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거의 회복했고, 유상증자와 연이은 이익 등으로 약 5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현금성 자산을 쌓은 대한항공에게 있어 2024년은 완전한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결정짓는 최적의 시기가 됐다.
이제 법적인 허들은 모두 넘어섰다. 이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게 남은 것은 어떻게 문제 없이 통합하느냐 하는 과제뿐이다.
그러나 이는 간단치 않아 보인다. 우선 무려 40년 가까이 경쟁하면서 형성된 양사의 문화는 완전히 다르다. 통합이나 결합에 있어서 가장 넘기 어렵지만 넘기만 하면 다른 어떤 것보다 큰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문화적 결합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양사의 소속원들이 차별감이나 박탈감을 갖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직급 체계도 다르고 급여 체계 역시 다르다. 눈에 보이는 직급 체계로 단순하게 통합할 수 없는 이유다. 승무원 등의 근무 기준 역시 다르다. 노조와의 긴밀한 협조 노력 없이는 워크룰(Work Rule)을 일원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인력, 문화적 통합에 가장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공감대를 만들지 못하고 통합한다면 반발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시간이 소요되면 되는만큼 통합 대한항공의 경쟁력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양사의 시스템 통합 역시 큰 과제다. 그동안 쌓아왔던 방대한 데이터를 통합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항공기는 24시간 365일 운항해야 하는 만큼 다양한 시스템 역시 '끊김 없이' 항공기 운항을 지원해야 한다. 시스템 통합 문제가 대규모 항공기 비정상 운항과 혼란을 만들어 낼 가능성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양사의 통합은 단순히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이용하는 소비자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
가장 민감하게 피부에 와 닿는 문제는 마일리지다. 마일리지는 소유자의 자산으로 여겨진다. 문제는 양사의 마일리지 시장 가치가 다르다는 점이다. 동일한 1마일이라 할지라도 양사의 1마일은 가치가 다르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다. 간단하게 1대1 통합·전환이 어려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1마일이 1마일이지 다른 항공사로 통합된다고 해서 1마일이 0.7마일로 산정되는 것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 완료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통합안을 마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한항공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부 자문업체를 선정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전환 비율을 설정한다는 방침이다.(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마일리지 통합 참고)
항공권 운임 인상에 대한 우려 역시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공정위는 공급 좌석을 2019년 대비 90% 이상 유지하도록 조건을 걸었고 물가상승률을 초과하는 운임 인상을 금지했다. 마일리지 통합 이전에는 제도를 불리하게 변경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항공권 운임이라는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공정위 기준에 불만을 나타낸다. 실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공시운임과 이보다 낮은 수준으로 실제 판매하는 운임(PCF)과는 엄연한 괴리가 있는 것이 현실이고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공시운임을 건드리지 않고도 실제 판매가는 상당 부분 인상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판매가는 공시운임을 상당 부분 할인한 형태이기 때문에 이를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른 항공사들과의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하는 것인데 이를 제한하는 순간 시장은 불공정한 상태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우려하듯 국토교통부는 운수권 배분을 LCC에 더 확대하는 등 독과점을 해소하는데 노력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이것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통합해 메가캐리어를 지향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 활동 제한 등으로 인해 오히려 기존 전체적인 우리나라 항공업 경쟁력을 깎아먹는 결과를 이어질 수 있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지난 4년의 기업결합 과정보다 2026년 말까지 앞으로 2년 동안 만들어내야 할 문화적·조직적 통합이 더 중요하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통합에도 불구하고 불협화음만 가능한 항공사로 전락할 수도,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이 나타날 수도 있다.
우리나라의 항공산업 경쟁력을 향상하면서도 소비자의 편익이 손실되지 않도록 정부와 대한항공은 협조와 노력을 다하고, 또 소비자 등 시장은 이를 감시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등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