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 기술 발달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노선 스케줄 비행시간, 과거보다 증가
- 공항, 항로, 교통량 등의 변화와 함께 항공사의 전략이 크게 작용
항공역사 100여 년 사이에 항공 기술은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초기 항공 개척시기에는 비행에 일주일 걸리던 거리를 지금은 단 몇 시간 만에 날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조금 이상한 데이터들이 발견된다. 현재 2010년대 항공편 비행시간이 20여 년 전인 1990년대보다 늘었다는 점이다. 비행시간 총량이 아닌 특정 지점에서 또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데 1990년대와 지금의 스케줄 비행시간(블록타임)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켈로그스쿨(Kellogg School)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21년(1997-2017년) 동안의 약 4300만 미국 항공편을 분석한 결과 각각의 노선 비행시간이 약 8.1% 증가했다. 1997년에 100분 걸렸던 노선 비행시간이 2017년에는 108분 걸렸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사이에도 항공기 기술 발전은 무섭게 이루어졌다. 항공기 비행 속도나 저하됐다거나 낮아졌다는 소식을 (당연한 것이겠지만)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거리를 비행하는데 1990년대보다 현재 비행시간이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다분히 항공업계의 전략적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비행기술이 후퇴해서가 아니라 항공교통 환경이 크게 변했을 뿐만 아니라, 이에 적응하고 극복하기 위한 전략 때문에 비롯됐다는 것이다.
우선 환경의 변화다. 공항에서 뜨고 내리는 항공기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에는 'ATC(Air Traffic Control) 지연'이라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교통량이 늘어나면서 본의 아니게 기다리게 되었다. 또한 터미널과 활주로 간 이동 경로 등의 차이도 지상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늘렸다. 자연스럽게 계획한 시간을 맞추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항공사들은 스케줄 비행시간을 늘려야만 했다.
켈로그의 분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항공사간의 경쟁도 비행시간을 좌우했다고 주장했다. 경쟁자가 많을수록 동일 구간에서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노력 또한 가열된다는 것이다. 실제 미국 항공시장은 최근 십여 년 동안 파산과 합병을 통해 대형 항공사의 수가 줄었다. 비행시간 단축에 대한 경쟁 압박이 덜해졌다는 것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스케줄 비행시간 증가의 가장 큰 배경은 고객과 약속한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항공사의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시간 약속을 어기는 경우 상대방에 대한 신뢰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일상적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특별한 매력이 없는 이상 만남을 꺼리게 될 것이다.
항공사 역시 대부분 여객사업이고 고객들이 가지는 이미지가 항공사를 선택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공항과 항로가 복잡해지며 늘어난 이동 시간을 해당 노선 비행시간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같은 노선이라도 항공사에 따라 비행시간(정확히 말하면 블록타임)은 조금씩 다르다. 항공사 전략적 판단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인천-나리타 구간 운항 항공사들의 스케줄 비행시간은 대부분 다르다. 대한항공은 2시간 25분 정도를, 아시아나항공은 시간대에 따라 2시간 10분에서 20분 사이로 설정했다. 저비용항공사인 진에어는 2시간 40분, 티웨이항공은 운항편에 따라 1시간 55분에서 2시간 25분, 제주항공은 2시간 25분이 스케줄 비행시간일 정도로 제각각 다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간혹 우스꽝스러운 해프닝도 나온다. 항공기가 과속했다느니 하는 주장이 그것이다. 계획된 비행시간보다 훨씬 빨리 도착했다며 과속 비행을 주장하는 국회의원이 나올 정도다.
스케줄 비행시간(블록타임)은 철저하게 항공사 전략과 함께 공항, 항로, 교통량 등 외부 변수를 반영한다. 앞서 언급한 인천-나리타 구간 비행시간을 보면 LCC가 오히려 FSC보다 스케줄 비행시간을 여유 있게 구성한다. 운항하는 터미널 위치가 멀어 택싱(Taxiing) 시간을 길게 잡는 것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비행과 비행 사이의 짧은 지상 체류시간(Ground Time)을 만회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항공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스케줄) 비행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교통량 급증에 따른 운항 환경 변화와 함께 항공사 저마다 가진 전략이 크게 작용했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