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9월 16일은 조금 특별한 날이었다.
우리나라 제 1호 저비용항공사였던 한성항공이 그 동안의 부진(운항중단)에서 벗어나 새롭게 출발한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10월 18일 운항을 중단한 이래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티웨이(T'way)항공이라는 새 옷을 입고 날기 시작했다.
이로써 우리나라에는 활발하게 운항하는 저비용항공사가 5개에 이르게 되었다. 제주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그리고 티웨이항공까지 말이다.
사정이 이쯤되니 이제 우리에게도 저비용항공사(LCC)는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단어가 되었다.
그런데 이 LCC라는 의미의 항공사를 표현할 때, 저비용항공사로 호칭하는 경우도 있고 저가항공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저비용항공사와 저가항공사는 다른 걸까? 다르다면 어떤 면이 다르다는 걸까?
국적 LCC
잘 아는 것처럼 저비용항공은 LCC(Low Cost Carrier), 즉 비용이 적게 발생하는 항공사라는 말이다. 항공요금이 싸서 저가항공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저비용항공과 저가항공은 다른 말이다.
항공사 기본 조직이나 운영 방법의 효율성을 통해 비용구조를 개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운임을 내릴 수 있다는 말이지, 쥐어 짜듯 항공요금을 내리고 나서 어쩔 수 없이 서비스를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저비용항공이라는 표현이 해당 항공산업의 구조적인 면을 보고 붙힌 이름이라면, 저가항공이라는 표현은 소비자 입장에서 붙혀진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솔직히 소비자 입장에서는 저비용항공이든, 저가항공이든 편리하고 값싸게 이용할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지 명칭 따위야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하겠다.
다시 정의하면 이렇다.
- 저비용항공사(Low Cost Carrier) :
항공사 영업이나 운송 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단순화하고, 조직을 다기능화함으로써 항공사 운영비용을 절감해 결과적으로 항공요금을 낮추는 항공사 - 저가항공사(Low Fare Carrier) :
항공운임 측면에서 봤을 때 다른 일반 항공사들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대를 구성하고 있는 항공사
(※ 참고로 Low Fare Carrier라는 용어는 널리 통용되는 표현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름을 구분해 붙인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별로 없다.
최근 저비용 혹은 저가항공사들을 보면 위 기준을 가지고 무우 자르듯 잘라 구분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같은 모습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다르게 구분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고로 저비용항공이라 부르던, 저가항공이라 부르던 별반 상관없다. 다만 해당 항공사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저가'라는 다소 싸구려라는 느낌이 들어간 표현보다는 '저비용항공'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길 원할 것이긴 하다.
한편 우리나라 LCC들은 다소 애매모호한 포지셔닝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우리나라 LCC 항공사들을 보면 항공운임 측면에서 저가(Low Fare)라고 보기도 어렵고, 구조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저비용(Low Cost)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붙힌 표현이 '프리미엄'이다. 프리미엄 저비용항공이라는 새로운 표현이 등장한 것이다. 물론 이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한 건 진에어 하나 뿐이지만, 나머지 항공사들도 속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요금은 일반 항공사의 70-80% 수준이니 항공운임이 저가(Low Fare)라고 보기 어려우며, 서구의 LCC처럼 공항 탑승수속 카운터 없애고, 승무원이 직접 승객 탑승업무를 담당하며, 무료 위탁 수하물 마저 없애 인력 소요를 최소화하는 등의 저비용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 항공 소비자들의 서비스 기대수준 때문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항공기는 고급 교통수단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다시말해 기존 항공사들이 그동안 제공해 온 서비스 수준을 LCC들에게도 요구한다는 것이다. 즉, 항공운임은 싸지만 서비스는 동일하게 받을 것을 기대한다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우리나라 LCC들은 항공운임을 더 이상 낮출 수 없다.
우리나라 LCC가 국내를 넘어 국제 항공시장에서 진정한 LCC로 성장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벽이 바로 이 부분이다. 현 상태에서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어찌어찌 끌어 모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해외 항공소비자를 유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에어아시아엑스 등 아시아권에서 진정한 저비용항공이라 불리는 항공사들이 한국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LCC의 경쟁상대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이 아니다. 외국 LCC들이다. 서비스나 노선망에서 경쟁력이 떨어지는 우리나라 LCC가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항공과 경쟁하기 힘들고, 항공운임 면에서도 외국 LCC와 경쟁력을 다투기 어렵다.
'프리미엄' 이라는 중간적 포지셔닝이 또 다른 항공 시장을 만들어 낼 것인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계륵'이 될 것인지... 항공업계의 또 다른 노력과 항공 소비자의 변화 만이 해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