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교통은 여러 국가를 넘나들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어느 교통수단 보다 언어 소통의 중요성은 크다.
현재 항공교통의 기준 언어는 영어다. 따라서 영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항공 안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유엔 산하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이런 영어의 중요성과 필수성을 감안해 2008년 부터 영어 자격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일정 수준의 자격을 취득하지 못하면 국제선 항공편 조종간을 잡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 국제 기준을 적용할 수 밖에 없으며 국내 조종사들 역시 영어자격을 취득하고 있다.
항공칼럼 영어 때문에 수백명 항공 승객 위험에 - ICAO 조종사 영어자격제도(2008/03/08)
하지만 최근에 문제된 것이 캐나다 원정 자격취득이었다. 국내에서 실시하는 EPTA(English Proficiency Test for Aviation)의 난이도가 높아 자격취득이 어렵자, 캐나다로 원정을 가 현지 조종사 영어자격 시험을 치르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었다. 당연히 국내에서 보다 자격 취득이 쉬웠다는 것이 이유였다.
왜 영어권 국가에서의 시험이 비영어 국가에서보다 쉽다는 걸까?
이유는 간단했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해당 업무에 대한 전문적이고 필요한 내용만을 자격시험에 담고 있지만, 비영어권 국가에서는 기본적인 영어구사 능력을 전부 평가해야 하기 때문에 항공부문 영어 외에도 일상 표현 등을 함께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문적인 항공 영어표현만 익히면 쉽게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캐나다 원정 시험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조종사에게 영어 구사능력은 조종능력 만큼 중요해
하지만 항공교통에서 관제사와 조종사가 정해진 표현만을 가지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Communication 능력을 갖출 수 없다. 대부분은 공식화된 항공 영어표현만으로 가능하지만 때로는 구어체를 사용할 때도 있으며, 급한 상황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사용할 때도 있다.
언어 구사능력이라는 것은 단순히 정해진 표현만을 달달 외어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알아 듣고 그에 적절히 응대할 수 있어야 언어가 가진 소명을 다하는 것이다. 항공업무에 대한 영어표현만을 알고 있는 조종사에게 긴급한 상황에서의 여러가지 다양한 상황을 영어로 설명하는데 알아듣지 못한다면 정말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국토부는 더 이상 캐나다 원정 영어 시험을 그냥 용인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현재는 국제선 항공편을 조종하려면 기본적으로 4급 이상 취득하고 3년(5급은 6년)마다 갱신(Re-current)해야 하지만 6급을 취득하면 원어민(Native)으로 인정해 갱신하지 않는 영구 자격이 된다. 국토교통부는 이런 현재의 제도를 수정해 외국에서 자격을 취득한 경우에는 무조건 유효기간(3년)을 두어 갱신하도록 하는 항공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기로 했다.
국내 민간 조종사 관계자(협회 등)들이 이 조치에 반발하고 나섰다. 비영어권 국가에서 영어권 국가 시험을 재단(?)하는 것이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다. 소위 '너희들이 영어를 캐나다보다 잘해?' 이런 심리에서 반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어이없는 주장이다.
국내에서 실시하는 EPTA 시험에 일상회화가 포함되어 있는 이유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그에 대한 비판을 가해야 한다. 비행하는 중에 사용하는 영어에 일상회화 표현이 전혀 필요없다는 주장을 합리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타당한 비판방식이다. (실제 언어소통 문제로 발생한 항공사고는 대부분 공식화된 항공영어 표현 이외에서 발생했다)
조종사들이 몇년 마다 주기적으로 영어시험을 치르고 자격을 취득하는 부담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단순히 좀 더 편한(?) 시험방식 만을 찾으려는 것은 자칫 원래 조종사 영어자격을 갖추도록 하는 취지를 비켜가려는 편법이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국토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캐나다에서 실시하는 조종사 영어시험이 ICAO 가 요구하는 기준과 다르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더욱 더 현재 제기하는 주장의 정당성을 찾기 어려워진다.
국가가 나서서 조종사들을 공연히 괴롭히기 위해 외국에서 치르는 시험을 제한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ICAO 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하겠다는 조종사 단체의 주장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알 수 없으나, 조종사 영어 구사능력이 항공안전과 직결되는 것인 만큼 신중해야 하며 집단 이기주의로 비춰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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