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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듯 떨어진 항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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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관계 확인없는 언론들 무책임은 어디까지
15일, 인도네시아 발리로 가기 위해 호주 퍼스를 출발한 항공기가 이륙한 지 채 30분도 안돼 갑자기 하강하기 시작했다.
승객과 승무원 151명을 태운 아시아 최대 저비용항공사인 에어아시아 소속 여객기(QZ535편)로 좌석 선반에서는 산소 호흡기(Oxygen Mask)가 떨어졌으며 승무원들은 비상상황임을 외쳤다.
항공기는 약 30여분 후 출발지 퍼스공항으로 되돌아와 무사히 착륙했지만, 이 사건에 대한 우리나라 언론 기사의 제목은 대략 이랬다.
"에어아시아 6km 공포의 급강하... 비행기 '아수라장'"
"에어아시아, 이륙 후 25분 만에 6km 급강하... 승무원 비명지르고 눈물 흘려 '공포의 회항'"
"에어아시아, 상공에서 추락하듯 급하강...승객 '가족과 작별인사 나눠'"
그리고 내용은 대략 '무려 6km를 급하강했다', '추락하듯 급하강', '승무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기내가 아수라장이었다' 등이 주를 이루었다.
언론의 내용만 보면 항공기가 마치 추락하다가 겨우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온라인 상에서도 이 사건과 관련해 '추락', '구사일생'이라는 표현이 주를 이루었다.
항공기 비행 중 고장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로든 항공사가 책임을 져야 하고, 만반의 대비는 항공사 의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떠한 변명을 해도 항공기를 비행시킨다는 것은 안전을 확증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고에 대해서도 항공사는 마땅히 응분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당시 기내 모습
하지만 항공사 문제와는 별개로 언론의 전달 내용과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사실과 공정함을 기본으로 해야 할 언론들이 감정적인 부분을 강조하며 불안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 그들이 보도한 '승무원들이 소리 질러 더 공포스러웠다'는 것과 자신들의 언론 태도와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다.
가장 충격적인 표현이 '6km 급강하', '추락'이라는 표현이다. 이를 보는 독자들은 '추락사고'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진짜 '추락'하는 상황이었을까? 언론 내용을 토대로 상상할 수 있는 것처럼 항공기가 추락하다가 고도 약 3천 미터(약 1만 피트)에서 구사일생으로 항공기 작동이 되살아난 것일까?
이는 민간 항공기 운항 규칙과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확한 고장 내용을 알 수는 없으나 산소 호흡기(Oxygen Mask)가 떨어졌다는 것으로 보아 기내 여압환경에 문제가 생긴 것만은 틀림없다.
이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여압장치가 가동되지 않는 고도 3만 5천 피트 환경에서 산소 호흡기 없이 인간이 정상적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90초 가량이다.1) 인간이 스스로 호흡할 수 있는 환경으로 신속하게 되돌려야 하지만 여압장치에 문제가 발생한 이상 항공기 스스로는 복구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압장치에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 호흡 가능한 1만 피트로 비행고도를 낮출 수밖에 없다. 여기에 소요되는 시간이 대략 10분에서 15분이며, 항공기 산소 호흡기로 공급 가능한 산소량도 약 15분 정도다.
그러면 사건을 일으킨 항공기는 언론 보도처럼 추락하듯 정말 급강하한 것일까?
당시 항공편 비행 데이터를 보면 최고 3만 4천 피트까지 상승했다가 (문제가 발생하자) 1만 피트 정도로 고도를 낮추었다. 여기에 걸린 시간이 약 11분이다. 즉 승객들이 산소 호흡기로 버틸 수 있는 한계 시간 정도다.
이 항공기가 출발할 때 1만 피트 고도에서 최고 높이(3만4천 피트)까지 상승하는데 20분 소요된 것에 반해 비상상황이 발생해 같은 고도(1만 피트)로 하강하는데 절반 정도의 시간이 걸렸으니 상승 시보다 약 2배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을 분석해 보면 초당 100미터 수평 이동에 11미터 하강했음을 알 수 있다..2) 이 정도가 추락 운운할 정도로 급강하인가?
또 한 가지, 무려(?) 2배나 큰 폭으로 하강할 때 느낄 승객들의 불편함을 고려해 이보다 더 완만하게 하강해야 했을까? 산소 호흡기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최대 15분가량인데 상승할 때처럼 20분 정도로 천천히 내려와야 했을까? 이렇게 되면 승객의 목숨은 장담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운항 규범에도 여압장치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1만 피트까지 최대한 신속히 하강하도록 하고 있다.
항공기 운항은 다른 교통수단과는 달리 위험 환경 대응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훨씬 까다롭고 엄격한 기준과 절차를 요구한다. 다소 승객의 동요가 예상된다고 해도 그 보다는 안전이 더 우선이기 때문이다. 운전 중 다른 차량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하게 꺾은 핸들 행위 자체를 비난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물론 승무원들의 호들갑(?)이 승객들을 더 불안하게 했다는데 대해서는 뭔가 대비책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통해 승객들의 불안감을 완화시켜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언론들 역시 그들이 비판하는 승무원들의 행동과 닮았다. 정확한 사실이 뒷받침되지 않는 '추락' 운운하는 과장된 발언은 승객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승무원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언론이 해당 사실을 직접 취재했을 리는 만무하다. 해외 언론을 대부분 그대로 옮기다 보니 3만 5천 피트에서 1만 피트까지 하강했으며 승무원들의 행동에 놀란 승객들 반응 인터뷰를 옮기는 정도를 넘어 각색까지 하는 무모함도 보인다.
심지어 해외 언론에는 소개되어 있는 항공사 발표 내용이나 조종사 인터뷰 등을 우리나라 언론 기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런 일이 발생했을까에 대한 고민과 관심, 노력이 아쉬운 부분이다. 그저 클릭 수에만 매몰된 왜곡된 언론의 모습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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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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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 피트 정도에서는 약 30초 만에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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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시속 350킬로미터 비행했으니 초당 약 100미터 수평 이동했으며, 약 24000피트를 11분에 걸쳐 하강했으니 초당 약 11미터 고도를 낮춘 것으로 분석된다. 즉 초당 100미터 가량 수평이동하는 동안 11미터씩 고도를 낮춘 것이다.
외신 내용도 보면 6킬로미터 7킬로미터 하강 운운하는게 많거든요.
언론이라면 뭔가 사실을 확인하는게 우선일 것 같은데요.
확인도 안하고 생각도 안하고 기사 내용 옮긴다라.. 그건 언론, 기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